[15th JIMFF] 비가 내리고 영화가 흐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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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마음에 경계를 허문다. 감각으로 스며든 음악은 감정을 틀어쥐고 ‘감동’이라는 한 방향으로 관객들을 이끈다. 그렇게 관객들은 각자가 세워둔 벽이 허물어지는 감각을 느끼며 음악의 힘에 감정의 지휘권을 넘긴다. 영화는 이를 영리하게 활용한다. 그리고 어떤 때에는 영화의 지휘권을 넘겨주기도 하는데, 그런 영화를 ‘음악영화’라고 부른다. 음악영화의 주인공은 단연 음악이다. 음악은 스크린에 영사되는 이미지들과 그 영사되는 이미지를 보겠다는 개인의 선택, 그리고 영화가 흐르는 시간동안 앉아있는 육체적인 감각과 함께 관객들에게 더 강렬한 기억을 남긴다. 이런 점에서 폭우가 쏟아졌던 제천 국제 음악영화제의 개막식은 그 동안 겪어보지 못했던 새로운 방식의 관람 경험이었다.

청풍호반 무대를 향할 때만해도 떠듬떠듬 내리는 비는 금방 지나갈 비처럼 보였다. 하지만 우비를 입고 하나를 더 받아 다리와 몸을 한 번 더 덮어야 할 정도로 비가 거세지자 그 때는 불안함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이 행사가 과연 계속 진행될 수 있는 것일까’

하지만 지난 4년 동안 내내 개막식에는 비가 왔었다는 이야기를 듣고서 이 행사는 빗속을 계속 달려 나갈 것이라는 걸 직감하고 나는 빗속에서 있기로 했다. 하지만 무대 뒤로 무대효과마냥 치는 천둥과 번개들을 볼 때마다 개막식 행사와는 전혀 다른 감정, ‘자연의 위대함’에 놀라며 원시인처럼 “오” 라고 낮게 감탄했다.

비에 비를 더할 수 있다는 걸 온 몸으로 느끼면서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비와 당신’을 들었다. 뻥 뚫린 야외에서 온 몸으로 비를 맞으면서 듣는 ‘비와 당신’은 오묘했다. 이때부터 이 현장에서 느끼는 감각은 새로운 감각으로 기억될 것이라는 걸 깨닫고 비에 나를 맡겼다. 개막작 <자메이카 소울 : 이나 데 야드>의 출연진들이 장대비 속에서 펼치는 레게 가락도 운명적으로 다가왔다. 제천으로 그들의 영화를 보러 온 관객에게 제천으로 온 또 다른 여행자가 자메이카의 소울을 전파하는 현장. 제 15회 제천 국제영화제의 개막식에 참가한 사람들은 어떻게 그 순간을 추억하든 ‘비’의 기억을 공유할 것이다. 심지어 자메이카에서 온 70대의 레게 가수 까지도. 이것이 손이 복숭아 씨 마냥 쪼그라들어도 계속 앉아있을 수밖에 없게 한 그날 여름비의 피할 수 없는 매력이었다.

개막행사가 끝나도 비는 그치지 않았다. 영화를 위해 마련된 잠깐의 어둠과 침묵, 그 사이에 비가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다. 열린 공간에서 내리는 비의 소리와 촉감, 상쾌한 여름의 냄새를 뚫고서 빛이 스크린에 펼쳐졌다. 그리고는 자메이카의 구성진 레게 가락이 비에 더해졌다. 비, 영화, 레게 이 독특한 삼합은 자리를 지킨 사람들의 감정을 묘하게 흐드러지게 만들었다. 비를 견디다 못해 떠나간 사람들의 자리를 모아서 다리를 뻗고 편하게 보는 사람들도 있는가 하면, 몸의 비를 레게음악과 함께 털기 위해서 일어난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천막 아래서 영화를 보며 흔들흔들 리듬을 탔다. 비와 영화와 음악에 취해 출렁이는 감정들. 비가 내리고 영화가 흘렀던 2019년 8월 8일의 여름의 밤은 그 비를 함께 맞았던 모두에게 굽이굽이 흐르는 강 같은 레게음악의 리듬과 함께 오래토록 특별한 추억으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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