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네 살, 대학원 신문사의 근로 장학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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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들어간 대학원의 학과에는, 대학원 신문사에서 일하는 선배들이 많았다. 편집부의 반 가까이 될 정도였다. 취미 활동이나 진로 준비는 아니었고, 조교 장학금을 타기 위한, 지극히 경제적인 방편이었다. 아르바이트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물론 문학 전공생들이었으니 관심사나 진로와 아주 관련이 없는 건 아니었다. 나와 동기들도 선배들에게 부탁해서 대학원 신문사에 들어가 일을 하고 돈도 벌게 됐다.

대학원 신문사란 대학의 학보사랑 비슷한데, (당연하지만) 대학원생들이 만드는 신문이었다. 다만, 학보사보다 훨씬 설렁설렁이었다. 한 달에 한 번 발행되는 16면짜리 신문에 단 한 면 할당된 내부 기사는 취재라기보다 대학원 행정처라든지 대학원 총학생회에서 받은 공지 사항을 정리해서 실었고, 나머지 지면은 모두 외부 기고를 받아서 채웠다. 신문사에서 일하는 열 명의 대학원생들은 기자라기보다 ‘에디터’ 비슷한 역할을 하며 외부 기고를 기획하고 섭외하는 일을 했다.

나는 신문 맨뒤의 문화면을 맡아서 기획했는데, 전통적인 문화예술 장르의 리뷰 같은 것보다는, 당시 한창 유행이던 포스트모더니즘 이론이라든지 페니미즘이나 동성애를 비롯한 성의 정치 관련 이슈를 주로 소개했다. 나는 당시 급진적인던 문화운동 단체들도 기웃거리며 최신 동향을 많이 주워듣고 있었고 꽤 발빠르게 필자를 섭외해서, 관심을 많이 받는 지면으로 만들었다고 자부한다. 심지어 당시 우리 학교의 스타였던 모 대학원생이 제작한 다큐에 우리 대학원 신문의 문화면을 유심히 들여다보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고, 역시 스타였던 모 교수가 일간 신문에 나의 기획 기사 소재를 그대로 차용해 칼럼을 쓰기도 했다.

그렇게 한 달에 두 번 모여, 한 번은 회의를 하고 한 번은 인쇄소에서 신문을 편집하면서 2년을 일했다. 주로 주변의 지인들에게 원고를 청탁하면서, (가난한) 글쟁이들에게 원고료를 보내주는 일도 꽤 보람 있었다.

생각해 보면 이 대학원 신문사라는 곳은 내가 처음으로 ‘경영’이라는 일을 접해볼 수 있었던 곳이었다. 학교 행정처로부터 편집국장에게 신문 인쇄비와 원고료 등 운영비의 전결권이 주어졌기 때문이다. 물론 나는 편집국장이 아니었지만 편집국장을 맡은 선배는 운영비를 부원들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고 동의를 받아가며 집행했다.

그러다가 나의 동기가 편집국장을 맡으며 일이 불만스럽게 돌아갔다. 그는 학부 때 학보사 편집국장을 맡았던 ‘거물’이었고, 자신에게 대학원 신문사 편집국장 직을 넘긴 선배의 운영 방침을 바꿔나가며 ‘그렇게 하는 게 아니었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 그러나 결국 그가 한 일은 민주적이었고 공개적이었던 체제를 점차 독재적이고 폐쇄적으로 바꿔나간 것이었다. 다른 신문부원들에게 의논 없이 혼자 사안들을 결정해 버리고, 대학원 공부가 바쁘다면서 한 달에 한 번 있는 편집 회의도 건너 뛰고, 그냥 자기에게 기획 내용을 이메일로 보내 통보만 하라는 경우가 잦아졌다.

다른 국원들도 그랬지만 나는 특히 불만스러워 하며 개인적으로 항의도 해보았다. 그러나 그는 “아, 바빠서~ 미안, 미안!” 하며 그냥 넘겨버리기 일쑤였다. 그러다가 결국 학년말이 다가왔다. 어차피 나이롱 신문사, 다른 문제는 대충 포기한다고 해도, 나로서는 그냥 넘길 수 없는 문제가 하나 머릿속에 남아 있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회식비였다. 건너뛴 편집 회의가 몇 번이나 되어 신문사 운영비가 상당 액수 남아 있을 것이 뻔했다.

나는 편집국장에게 정색하고 문제 제기를 했다. 회식비 안 쓰고 남은 건 어떻게 할 거냐고. 한때 친구이기도 했던 편집국장은 도둑 취급이라도 당한 것처럼 화를 냈다. “내가 삥땅이라도 칠까봐 그러는 거냐? 다 잘 쓸 데가 있으니까 걱정 마!”

그러더니 그는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집 수십만 원짜리 전집을 사서 대학원 신문 편집실에 턱 비치해 놓고선 말했다. “그 돈 다 여기 썼다! 이제 됐지?” 나는 어이가 없었다. 그 돈은 편집국장이 그런 식으로 마음대로 판단해 써도 되는 돈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나는 그와 다시 마주치거나 연락을 주고받은 일도 없었다. 어쩌면 당연한 귀결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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