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 만에 재개봉한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과 장국영의 화양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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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꽃피는 봄이 오면 거짓말처럼 떠난 그가 생각난다. 마치 다시 만나자는 약속이라도 한 듯 그의 대표작들이 다시 스크린에 펼쳐진다. 올해는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감독 첸카이거, 1993)이 재개봉한다. 제46회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패왕별희>는 <영웅본색> 시리즈, <천녀유혼> 시리즈로 입지를 굳힌 배우 장국영의 가장 화려했던 시절을 카메라에 담아낸 작품이다. 이번에 극장에서 선보일 영화는 기존의 극장판에서 15분가량 늘어난 버전으로, 개봉명도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로 바뀌었다. 27년 전 장국영의 전성기를 아로새긴 영화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에 대한 이야기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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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든지 할 수 있습니다.” 관금붕 감독의 1987년작 <인지구>에서 진방(장국영)은 연인 여화(매염방)와의 사랑을 이루기 위해 모든 걸 내던지는 남자다. 명문가 부모의 반대로 여화와 결혼하지 못한 진방이 자신의 집에서 나와 먹고살기 위해 선택한 일은 바로 경극이다.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혀봤을 금수저 출신인 그에게 훈련이 고된 경극은 고생길이나 다름없다. 지금은 홍콩에서 사라지고 없는 경극장인 태평극장에서 진방은 허드렛일을 하며 경극을 배운다. 새 출발도 잠시뿐, 세상으로부터 사랑을 인정받지 못한 진방과 여화는 함께 죽기로 결심한다. 여화는 진방에게 다시 태어나면 3월8일 오전 11시 의홍루에서 만나자고 약속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수심에 잠긴 진방의 얼굴은 세상을 다 잃은 표정이다.

이 얼굴은 배우 장국영을 <패왕별희>(1993)로 이끈 발판이었다. <황토지>(1984)로 데뷔해 <현 위의 인생>(1992)을 연출했던 ‘중국 5세대’ 감독 첸카이거가 <인지구>를 보고 장국영에게 <패왕별희> 출연을 제안한 건 널리 알려진 일화다. <인지구>와 <패왕별희>의 시나리오를 썼던 이벽화 작가가 장국영과 매염방을 <인지구>에 출연시키는 데 영향력을 행사했고, <마지막 황제>(1987)에서 푸이를 연기한 배우 존 론이 맡을 뻔했던 <패왕별희>의 데이 역할을 장국영에게 가도록 힘썼다는 일화도 꽤 유명하다. 배우 장국영의 가장 화려했던 시절을 카메라에 담아내 제46회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패왕별희>가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이라는 다소 거창한 제목으로 27년 만에 재개봉한다.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은 데이(장국영)와 샬로(장풍의) 두 주인공이 우정을 쌓는 어린 시절과 편집됐던 일부 장면 등이 추가돼 극장판보다 15분가량 늘어났다. 어린 시절, 데이가 스승으로부터 혼나고 샬로가 데이를 안타까워하는 장면, 장 내관의 침소에 강제로 들어갔다 나온 뒤 장 내관 집 앞에 버려진 아기를 안고 경극단에 가는 장면, 공연이 끝난 뒤 여자를 만나기 위해 술집에 가겠다는 샬로에게 데이가 “스승님이 끝까지 함께하랬잖아”라고 말하는 장면, 데이가 샬로와 주샨(공리)에게 가지 말라고 외치는 장면 등 일부 장면들이 새로 편집되거나 추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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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왕과 우희의 이별’(覇王別姬)이라는 제목대로 <패왕별희 디 오리지널>은 어린 시절부터 함께 성장한 데이와 샬로, 두 남자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과 엇갈리는 인생을 그린 이야기다. 데이는 어머니(장문려)로부터 버림받다시피 경극단에 끌려가지만, 경극단은 그가 “‘육손’이라 배우가 될 팔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단원으로 받아주지 않는다. 매춘부인 데이의 어머니는 그를 더이상 사창가에서 키울 수 없어 데이의 새끼손가락을 잘라 경극단에 두고 떠난다(그녀는 한번도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경극단에서 매춘부의 자식이라 손가락질 당하던 데이에게 샬로는 우산 같은 존재다. 샬로는 선배로서 때로는 이부자리를 챙겨줄 만큼 따뜻하고, 또 데이가 스승으로부터 혼나지 않도록 엄격하게 대한다. 데이와 샬로는 눈칫밥과 눈물밥을 함께 먹고 고된 경극 훈련을 버티며 성장한다. 성인이 된 그들은 경극 <패왕별희>의 패왕(샬로)과 우희(데이)가 되어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과 인정을 받는다. 하지만 1937년 중일전쟁, 1945년 일본 항복, 1949년 인민해방군의 베이징 입성, 1966년 문화대혁명 등 굵직굵직한 사건들을 거치면서 두 사람은 역사의 풍랑 속으로 빠져들고 그 과정에서 둘의 관계에 균열이 생긴다.

<패왕별희>는 극중에서 중국 현대사의 변곡점마다 등장하는 동명의 경극이다. 명대 소설 <서한연의>(西漢演義)의 내용을 가져와 재구성한 경극 <패왕별희>는 진나라 말, 한나라 유방과 초나라 항우의 전쟁을 배경으로 한다. 한나라의 계략에 휘말려 군사를 출병했다가 초나라를 통째로 빼앗긴 항우 옆에는 애첩인 우희와 애마인 추, 둘밖에 남아 있지 않다. 천하를 호령하던 항우가 마지막임을 직감하고 연 만찬에서 우희가 따라주는 술잔을 들이켠 뒤 치밀어오르는 분노와 감회를 노래로 읊었다. “힘은 산을 뽑을 만하고, 기개는 온 세상을 덮을 듯한데, 시운이 불리하여 오추마조차 달리지 않는구나. 오추마가 달리지 않으니 어찌해야겠는가? 우희야 우희야 이를 어찌한단 말이냐!” 이 노래가 경극 <패왕별희>의 그 유명한 <해하가>다. 항우는 우희에게 다시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르니 전쟁에서 지더라도 후일을 도모하라고 당부하지만, 우희는 결코 혼자 살아가지 않겠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한나라 군사들이 이미 포위하여, 사방에는 온통 초나라 노랫소리뿐이네. 대왕이 의기를 상실했는데 소첩만 어찌 홀로 살아남겠습니까!” 우희는 항우의 주의를 돌린 뒤 그 틈을 타 자결한다. 원작의 비극적인 정서는 장국영이 연기한 데이의 기구한 삶에 고스란히 입혀진다.

영화는 <패왕별희>뿐만 아니라 경극 <귀비취주>(연인 당 현종을 기다리다 못해 쓸쓸함을 달래기 위해 술을 마시는 양귀비 이야기. 샬로와 주샨의 결혼식을 보고 실망한 데이가 다음날 일본군 앞에서 공연한다), 곤극 <목단정>(중국 고전 가극으로 <로미오와 줄리엣>처럼 이루어지지 못하는 사랑 이야기로, 무반주로 노래를 부르는 창극이다. 영화에서 데이가 일본군에 잡힌 샬로를 빼내기 위해 일본군 앞에서 선보인다) 등 영화에서 데이와 샬로가 선보이는 경극과 창극을 통해 그들에게 닥친 상황과 감정을 절묘하게 비유한다.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버림받은 데이에게 경극은 삶의 전부다. 경극단 생활이 너무 고되어 친구와 함께 도망쳤다가 죽을 각오를 하고 경극단에 다시 돌아온 것도, 경극 <패왕별희>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다. 데이와 친구가 경극단을 빠져나와 간 곳이 경극장이고, 하필이면 그곳에서 <패왕별희>를 공연하고 있었으니 경극은 데이에게 운명인 셈이다. 둘은 경극 속 패왕의 연기를 보며 “얼마나 연습했기에 저렇게 멋지게 하는 걸까. 맞기는 또 얼마나 맞았겠어. 나도 저런 배우가 되고 싶은데”라며 눈물을 왈칵 쏟는다.

고된 훈련의 세월이 지나 인기 경극 배우가 된 데이와 샬로의 삶은 엇갈린다. 우희처럼 살고 싶은 데이와 달리 샬로는 무대에서만 패왕이고 싶어 하는 혈기왕성한 청년이라 둘의 애증은 더욱 깊어진다. 데이는, 공연이 끝난 뒤 점찍어둔 여자 주샨을 보기 위해 술집에 가겠다는 샬로에게 화를 낸다. “사부님의 말씀을 잊었니. 우리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어. 죽을 때까지 함께하랬잖아. 나는 너랑, 아니 우리 평생 함께 노래하면 안될까. 일분 일초가 모자라도 한평생이 아니잖아.” 이 말을 들은 샬로는 “너 정말 경극에 빠졌구나. 경극 속에선 함께하지만 현실에선 그게 아니지.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려고 그런 말을 하는 거야”라며 웃어넘긴다. 그 말을 들은 데이는 버럭 화를 내고 등을 돌린다. 둘이 다툰 다음날, 주샨이 보러 온 <패왕별희> 무대에서 패왕(샬로)이 “사방에서 초나라의 노래가 들리니 유방이 초나라를 점령한 것 같소. 이제 우리도 끝난 것 같소”라고 노래하자, 우희(데이)는 “대왕님, 오늘이 우리의 마지막 날인 듯하오”라고 노래하면서 막이 내리는데 둘의 처지를 정확하게 전하는 것 같아 참 씁쓸하다. 데이와 샬로의 엇갈린 인생이 경극과 크게 다르지 않은 걸 보니 인생은 경극이요, 경극은 인생과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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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우에 대한 절개를 지킨 우희만큼, 경극에 혼을 다 바친 데이만큼 흥미로운 건, 실제 장국영이 살아온 삶이 데이의 그것과 아주 다르지 않다는 사실이다. <영웅본색>(1986), <천녀유혼>(1987), <영웅본색2>(1987), <인지구>, <아비정전>(1990), <종횡사해>(1991), <백발마녀전>(1993) 등 많은 히트작에 출연해 입지를 굳힌 당대 최고의 스타 장국영에게 <패왕별희>는 큰 도전이었다. 대륙으로 진출한 것도, 영화에서 보통어를 구사한 것도 처음이기 때문이다. 첸카이거 감독을 처음 만난 날, 장국영은 “나는 데이에 적격이다. 내 안에는 남성성과 여성성이 공존하고 있다. 나 자신이 바로 데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는 평소 인터뷰에서 “예술가는 항상 남성성과 여성성을 모두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술은 남성도 여성도 아니기 때문”이라고 강조한 것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내로 태어났지만 무대에선 여성으로 살아가야 하는 데이 또한 그와 같은 마음이지 않았을까. 어린 시절 장국영이 아버지로부터 제대로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성장한 것도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른 채 어머니에게 처절하게 버림받은 데이와 닮았다. 영원히 변하지 않을 거라 믿었던 사랑에 버림받은 데이의 상실감이 장국영을 거쳐 더욱 생생하게 전달된다.

무엇보다 <패왕별희>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장국영에게 중요했던 과제는 진짜 경극 배우 데이(처럼 보)여야 했다는 사실이다. 전작 <인지구>에서 경극 연기를 한 적 있지만 아주 짧은 장면이라, 이야기 곳곳에 경극이 등장하는 <패왕별희>에 비할 바가 못된다. 그래서 제작진은 만일을 대비해 현장에 장국영의 대역을 맡을 경극 배우 두명을 준비해놓기까지 했다. 장국영은 당시 인터뷰에서 데이가 되는 과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고 전했다. “베이징에 와서 가장 중요했던 일은 경극 선생님을 뵙고 경극을 배우고 보통어를 익히는 일이었다. 수준 높은 경극 동작으로 감정표현을 하는 건 힘들었지만 제작진은 촬영이 끝날 때까지 대역배우를 쓰지 않았다. 그게 노력한 결과다. 경극 장신구를 착용하고, 무거운 복장을 입은 채 불덩이 같은 여름에 촬영하는 게 무척 힘들었다.” 데이가 되는 일이 얼마나 고역이었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한 사람에 대한 의리와 사랑을 지키고 경극에 모든 걸 쏟아붓는 데이의 삶이 지금 시대에 다소 고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데이의 헌신적인 마음에 공감되는 건 어쩌면 장국영의 순수한 열정과 때묻지 않은 얼굴 때문인지도 모른다. 세상을 떠난 지 17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스크린 속 앳된 장국영의 잔상은 오래 남는다.
김성훈


Comments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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