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과 머무름의 부재


공간에는 시간이 중첩된다. 모든 움직임의 반복이 남아서 복잡한 역사를 이룬다고 할 수 있다. 물리적 시간은 바로 이 순간이 지나면 과거가 되고, 바로 지금은 현재이면 이제 곧 도래하는 시간은 미래이다. 과거, 현재, 미래의 직진의 시간을 지향성의 존재론적 사유로 바라보면 시간은 중첩되어 순환하는 동시성을 지닌다.

내가 어떤 장소에 갔을 때 그 공간에 머룰러 있다. 그리고 공간을 둘러본다. 거기에는 많은 시각이 대상화되어 들어온다. 이 흐름에서 시간은 직선으로 나가고 있는 것 같지만, 정지의 순간순간에 시각들의 존재가 나로 인해 드러난다. 공간이 창출되어 시작한 시간부터, 그리고 더 이전의 자연상태에서 더 이전의 빈상태에 내가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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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하철을 타고 빈자리에 앉았다. 열차는 끊임없이 시간에 따라 이동하는 속도 운동을 한다. 이는 물리학의 순환법칙이다. 나는 빈자리에 머물러 어떤 행위를 한다. 책을 읽거나, 신문을 보거나, 어떤 생각에 잠겨있거나, 열차 밖의 풍경을 살펴본다. 그 행위는 나의 지금뿐만아니라, 이전에 같은 자리에 앉았던 점유자들의 한순간 중 하나일 것이다. 나는 그 순간에 그 장소에 머물러 있으면서 연속된 하나의 연속체의 일부이다. 그것은 운동이자 기억의 형상이다.

장소에 머물러 있을 때 모든 역사를 몸소 체험하는 역사 속의 한가운데 있다. 장소에 있던 여러 기억들을 바라보며 시간안에 역사를 몸소 받아들인다. 장소의 특별함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그 장소의 기억에 내가 순간적으로 박탈되어 버리는, 그것을 차단시키는 사건이 발생하면 어떨까? 역사의 흐름, 기억을 받아들이는 전달하는 존재에서 박탈시키는 주체라면, 그 사태의 원인은 무엇인가?

내가 스마트폰을 들고 만지작거리는 순간 나의 의식은 나의 손가락 끝에 집중되어 화면속에 응시된다. 이러한 순간적 응시는 주변을 모두 흡수하듯이 의식마저 빨려들어간다. 의식은 외부를 의식하고 있지만, 스마트폰에 표상된 문자기호들과 이미지에 대상화하여 응시한다. 이 가까움은 나의 주체를 외부로부터 철저히 분리시킨다.

그래서 "나는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고로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무의식의 명제가 성립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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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야민의 역사에 대한 테제는 기억의 전승이라는 독특한 역사 관념을 지닌다. 내가 그 장소에 있을 때 과거에 쌓여온 시간의 기억은 은밀한 약속의 잔여물로 남아있다.

" 과거는 그것을 구원으로 지시하는 어떤 은밀한 지침을 지니고 있다. 우리 스스로가 예전 사람들을 맴돌던 바람 한 줄기가 스치고 있지 않는가? 우리가 귀를 기울여 듣는 목소리들 속에는 이게 침묵해버린 목소리들의 메아리가 울리고 있지 않는가? 우리가 구애하는 여인들에게는 그들이 더는 날지못했던 자매들이 있지 않는가? 만약 그렇다면 과거세대의 사람들과 우리 사이에는 은밀한 약속이 있는 셈이다."
- 벤야민의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 중 역사테제 2

내가 스마트폰만을 응시하는 순간 이은밀한 시간의 기억 모든 것들은 외부와 분리되어 망각된다. 이 망각은 전승의 단절이자 과거 시간을 뛰어넘는 시간의 중첩을 다시 과거로 돌리는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디지털 시대에 대상화된 하나의 객체가 되어 과거의 은밀함과 미래의 가능성이 사라진 현재에 앉아 있는 의식이 지각과 연결된 객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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