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추린 오늘의 역사 6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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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향토예비군법 시행령 공포
향토예비군은 1968년 2월 27일 대통령령 제3386호로 「향토예비군설치법시행령」을, 1968년 4월 1일 국방부령 제123호로 「동법시행규칙」을 제정·공포하였다. 그 후 현실에 맞지 않는 부분이 많아 다시 1968년 5월 29일 법률 제2017호로 「향토예비군설치법」을, 1968년 6월 13일 대통령령 제3482호로 「동법시행령」을, 1969년 1월 8일 국방부령 제131호로 동시행규칙을 전문 개정하기에 이르렀다. 이 관계법령은 그 후에도 수차에 걸쳐 개정되었다.

북한은 1968년 휴전선 근방에서 교란행위뿐만 아니라 무장공비를 남파하여 청와대 공격을 기도하고 잇따라 해상에서도 미국 해군의 정보수집함 푸에블로 호를 비롯한 한국 어선의 납치행위 등을 계속하는가 하면, 무려 300여건, 1천 여 명에 달하는 무장간첩을 남파했다. 이와 같은 긴박한 상황 하에서 정부는 자위를 위한 중대 결의를 하고 유엔에 대해 자주국방 요구를 하게 되었다. 이 요구는 특히 미국의 대북한 유화정책에 대한 도전이기도 했다.

박정희대통령은 유엔 중심의 국방정책을 자주국방태세로 전환하고, 향토예비군 2백50만 명의 무장화하고, 무기생산 공장의 연내 건설 등의 내용을 발표했다. 이 발표는 우리의 안보를 자주국방 개념으로 전환시킨 것이었다.

이에 따라 1968년 3월 26일까지 향토예비군 191개 대대, 2천6백8개 중대, 478개 직장중대가 편성되어 총 1백66만2천143명으로 조직편성을 완료하고 이 해 4월 1일에 대전 공설운동장에서 창설식을 갖게 되었다.

1993년 백남준 제45회 베니스 비엔날레 대상
한국 출신의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 백남준씨가 사상 최초로 제45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대상 가운데 하나인 `최고 독립관상'을 수상했다.

약 1천여명의 귀빈들이 참석한 가운데 비엔날레의 주행사장인 자르디니공원에서 열린 베니스 비엔날레 개막식에서 백남준씨는 독일조각가 한스 하케와 함께 오스카르 루이지 스칼파로 이탈리아 대통령으로부터 베니스 비엔날레의 상징인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백남준씨는 이번 비엔날레에 독일 국적이 없는 작가로는 최초로 `독일관' 공동대표로 출품, 화제를 모았었다. 한국출신작가가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대상을 수상하기는 백남준씨가 처음이다.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수백명의 사진기자들로부터 가장 많은 카메라 세례를 받은 백남준씨는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로 독일관이 `최고독립관상'으로 결정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상을 탄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올림픽처럼 꼭 상을 타야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고 담담히 수상소감을 피력했다.

그는 자신이 독일관 공동대표로 선정된 것에 대해 "물론 명예롭다고 그들에게 말했지만 독일로서도 그런 외교적 제스처가 필요했을 것"이라며 독일국적이 없는 나와 독일에 비판적인 작업을 많이 해온 하케를 공동대표로 선정한 것은 독일관이 상을 받건 안받건 독일 이미지 개선에 크게 도움이 되는 아주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번 비엔날레에서는 대상 수상을 둘러싸고 백남준, 하케, 카바코프, 부르조아,해밀턴 등이 막판까지 치열한 경합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수상발표 직전까지 일체 알려지지 않아 매일 저녁 상의 향방을 둘러싸고 미국(美國)과 유럽의 큐레이터들간에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결국 백남준씨와 함께 대상을 놓고 겨루었던 작가들은 거의 `명예상'으로 밀려났다.

베니스 비엔날레 대상 수상제도는 1968년 유럽에 휘몰아친 학생들의 데모여파로 폐지됐다가 86년부터 부활됐다.

2000년 김대중 대통령-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남북정상회담
2000년 4월 10일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 박지원이 남북정상회담의 예정을 발표했다. 원래 발표된 일정은 6월 12일부터 14일까지였지만, 북한측이 준비가 덜 되었다는 이유로 하루 연기를 통보하고 남측도 이걸 받아들이면서 6월 13일로 조정되었다.

2000년 6월 13일. 남한과 북한의 정상이 역사상 처음으로 만났다. 역사적인 만남은 평양 순안 공항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공항에 깜짝 방문했고,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은 손을 맞잡았다. 남북분단 55년 만에 이루어진 만남이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은 회담 전과 후로 북한에 대한 남한의 인식을 크게 바꿔놓았던 사건이었다. 한 포털사이트에 ‘김정일 팬클럽’이 만들어지기도 했을 정도. 당시 이 클럽을 만든 사람은 “북한에 대해 뭔가 잘못 알고 있었다는 생각에 김정일 위원장의 캐릭터가 연예인처럼 멋져 팬클럽을 조직하게 됐다”고 했었다. TV를 통해 남북한 정상이 만나 대화하고 같이 식사를 하며 웃는 모습은 그 정도로 충격이었다.

정상 회담 이후 남북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 관광, 북한의 남한 주최 스포츠 경기 행사 참가 등 민간 교류 사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남북 당국간 회담이 지속됐으며, 북한은 일본, 미국과도 화해 분위기를 유지하며 국교 정상화 교섭에 나섰다. 김정일의 조기 서울 방문도 예견됐으나 국제정세의 급변 등으로 실현되지 않았다.

1948년 한반도가 분단된 이후로, 두 당국의 대표가 처음으로 만난 회담이다.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남북한관계사의 이정표로 남을 6.15 남북 공동 선언을 발표했다. 한반도 평화 조성과 햇볕정책의 결실과도 같은 이 회담은, 김 전 대통령의 생애 전반에 걸친 한국 민주화 운동과 함께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는 것에 영향을 미쳤다.

2002년 신효순 심미선 두 여중생 미2사단 궤도차에 깔려 사망
경기도 양주시 광적면 56번 지방도에서 미2사단 44공병대(캠프하우즈) 소속 미군 장갑차(운전사 워커 마크 병장.36세)가 앞서 가던 여중생 신효순(14.조양중2년), 심미선(14.조양중2년)양 두명을 치어 그 자리에서 숨지게 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미군은 사고 직후 미군 의무요원만 호출하였을 뿐, 한국경찰에 전혀 연락하지 않은 채 약 1시간 가량 방치하였다. 결국 사건 발생 1시간 후쯤 지나가던 차량운전자가 경찰에 신고해 인근 파출소 경찰관이 현장에 도착하여 의정부경찰서에 지원요청을 하였다. 제보를 받은 구급차 운전자가 현장에 도착하여 시신을 수습하고 병원으로 옮긴 후 의정부경찰서에서 현장에 도착하였다.

사건 발생 다음날인 6월14일 관련 사회단체에서 사건현장을 확인하였고, 미 제2사단은 같은 날 사회단체를 배제하고 유족들만 참여시킨 채 정확한 기초조사가 없이 현장브리핑을 하였다.
하지만 책임자에 대한 자체처벌 문제에 대해서는 답변을 회피하고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채 끝마쳤다. 한국측에서 이 사건을 조사, 재판해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졌으며 미군측에 재판권 포기를 요청했으나 미군은 이를 거절했다.

주한미군 지위협정(SOFA)에는 주한미군의 공무수행중 발생한 사건의 경우 미군측이 1차적 형사재판관할권은 갖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이 사건에 관련한 재판관할권을 미군이 가지게 되었다. 불성실한 태도로 사건을 처리한 미군측과 책임자의 처벌없이 무죄 판결로 끝난 미군측의 재판에 유가족을 비롯한 국민들의 항의가 거세졌으며, 국민들의 반미감정이 높아졌다.

사건발생 이후 6개월이나 지나서야 이루어진 부시 대통령의 사과 표명과 미국대사를 통한 형식적인 사과에 반미 분위기가 더욱 고조되었으며, 여중생 사건 무죄판결 무효, 불평등한 한미 SOFA 전면개정 요구, 반미시위 등이 계속되었다.

2015년 공수부대 중사 출신 최원창씨, 인터플로라 월드컵 1위 수상
독일 베를린의 한 경기장. 마이크를 든 사회자가 외쳤다. "2015 인터플로라 월드컵 1위 수상자는 한국에서 온 알렉스 최(본명 최원창·45)입니다." 구석에 있던 최원창이 환호성을 지르며 뛰어나왔다. 그는 눈물을 글썽거리며 꽃다발과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인터플로라 월드컵은 세계 최고의 플로리스트를 가리는 대회다. 4년에 한 번 열리며 올해가 14회째다. 국가당 한 명이 출전하는데, 이번에는 미국·영국·독일·덴마크·한국·일본·중국 등 26개국에서 참가했다. 우리나라에선 예선을 거쳐 최씨가 뽑혔다. 이 대회에서 한국인은 물론, 아시아인이 1위에 오른 것은 처음이다.

최원창은 경북 김천의 산골 출신이다. 고교를 졸업하고 입대해 4년 6개월간 공수부대에서 복무하고 중사로 전역했다. 그가 꽃과 인연을 맺은 건 여덟 살 위 친형이 운영하는 꽃집에서 일하면서부터다. 화환과 조화를 만들고 영안실 제단 장식도 직접 했는데 부케처럼 손이 많이 가는 것들은 외부에 맡기는 것이 싫었다.

"부케 같은 꽃 장식을 배우려고 반년간 학원에 다니다 2002년 처음 나간 대회에서 1등을 했다. 이후 2008년 전국기능경기대회에서 은메달을 받는 등 각종 대회에서 수상했다. 한국에서 두 번째로 인터플로라 월드컵에 출전했던 플로리스트의 도움을 받아 독일 플로리스트 마이스터 자격을 땄고, 함께 일도 했다. 서울의 몇몇 유명 백화점 꽃 장식을 맡았고,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에 등장하는 꽃꽂이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해외 대회 참가 횟수도 늘었다. 꽃 장식을 선보이기 위해 간 나라가 10개국이 넘는다. 가장 자신 있는 스타일은 독일식. 이유는 "영국·미국으로 대표되는 웨스턴 스타일 꽃꽂이보다 덜 인공적이고 자연을 그대로 가져다 놓은 느낌이어서"라고 했다. 가장 좋아하는 꽃이 난(蘭)인 것도 정갈하면서도 자연스러운 미가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는 새로운 시도를 즐긴다. 이번 월드컵에서도 과일이나 커피콩 등을 이용해 천연 염색한 재료들을 풀·못 등을 쓰지 않고 작품으로 완성시켜 높게 평가받았다.

1890년 양화진에 외국인 묘지 허가(1890.06.13 음력)
1917년 세브란스연합의학전문학교 개교
1938년 경성제대 강당에서 육군지원병훈련소 입소식 거행
1951년 한국전쟁중 유엔군 3.8선 도달
1955년 이기붕 제50차 IOC총회(파리)에서 IOC위원으로 뽑힘
1968년 일본 우리나라에 돌려줄 문화재목록 작성
2006년 한국 축구대표팀, 토고전 2대1, 월드컵 사상 첫 원정 승리
2018년 오늘 제7차 동시지방선거, 더불어민주당 압승
2019년 경기도 양주에 효순미선추모공원과 추모비(소녀의 꿈) 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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