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7.11 기록] 엮고 엮이여 인연


연어입니다.


비운의 올림픽 은메달리스트 김인섭을 아시는지.

프로필을 보자. '비운'이란 수식어는 이럴때 붙이는가 싶을 정도다.

  • '98 방콕 아시안게임 금메달
  • '99 세계선수권 금메달
  • '99 아시안선수권 금메달
  • '99 세계선수권 금메달

마침내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당시 기록은 41연승. 그러나 올림픽 시작과 함께 수난은 시작된다.

  • 1회전 재경기 끝에 왼손 손가락 2개 골절
  • 2회전 재경기 끝에 늑골 인대 파열

1, 2회전 모두 우승 라이벌과의 격전, 그것도 승리 이후 상대의 불복과 어필에 의해 치른 재경기들이었다. 다음날,

  • 8강 승
  • 4강 승

불굴의 투자로 이겨낸 승리. 그리고 대망의 결승전.

  • 초반 3점 선취
  • 부상으로 수동적인 경기를 펼치자 주심의 빠데루 선언

늑골 부상중인 김인섭 선수를 가만두지 않았다. 부상 부위의 집요한 공격. 마침내 승리는 상대 선수에게 가고 만다. 그리고 김인섭의 인터뷰

"모든 것을... 모든 것을 다 바쳤거든요.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늘이 저를... 은메달 밖에 안 만들어 주는거 같아요."

짙은 경상도 사투리로 울먹이며 쏟아낸 말.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가슴 속에 묻어두었을 이 말을 다시금 듣게 된건 어느 회식 자리였다. 팀에 새로이 합류하게 된 분을 반기는 환영회 자리.

그는기 소개를 시작하더니 갑자기 김 김인섭 선수의 인터뷰 발언을 꺼내들었다. 첫 인사말에 녹아들만큼 김인섭의 멘트는 그의 신념이 되어 있었나 보다. 인상 깊은 자기 소개였고, 더불어 김인섭 선수에 대한 기억도 상기된 자리였다. 그러나 나는 인상 깊은 에피소드 정도로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회사 건물에 입주자용 휘트니스 센터가 있었다. 아침 운동을 오는 사람들보다 더 일찍 들어오는 사람들은 새벽에 출근하는 사람들이었고 그러다 보니 서로 안면 정도는 익히고 있었다.

다들 부시시한 모습으로 교통 체증부터 피하려온사람들인데다가 운동이동이 아닌 샤워가적인 사람들이다보니 대개는 홀 홀딱 벗은 몸으로 서로를 마주하기 일쑤였다. 인사를 나누기도 뭐한... 그런 사이들.

하루는 새벽 샤워장에 나와 다른 분이 있었다. 갑자기 샤워장을 청소하시는 아주머니 분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들어오신다. 아무도 없다 생각하셨나 보다.

"저... 지금 사람이 있는데요..."

당황하신 아주머니 탄성 사이로 옆 부스에서 샤워를 마친 분이 '픽'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홀딱 벗은채 수건으로 몸을 가리고 빼곡히 얼굴을 내밀던 우리 둘은 당황스런 상황에 서로 웃음을 보이게 되었고, 마침내 서로 말을 트게 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자기 소개 때 김인섭 선수를 언급했다는 형님이 책 한권을 출판하게 되었다. 책을 잔뜩 사서 싸인을 받아둔 나는 한 권 한 권씩 소중한 지인들에게 선물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하루는 왜 그랬는지 새로 안면을 트게 된 건물 입주자 분에게 그 책을 건네게 되었다.

"친한 형님 분이 책을 한 권 냈는데요, 보니까 동향이신 것 같아서 한 권 선물로 드릴까 합니다. 싸인도 받아 놓은거고요."

밤 늦게 문자가 온다.

  • 주신 책 잘 읽고 있습니다. 프로필을 보니 중학교, 고등학교, 게다가 유학했던 대학 선배셨네요. 연락처 좀 주시면 제가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책에 적힌 내용이 너무 좋네요.

어느날 형님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지금 공항이다. 미국으로 돌아가려고. 급히 표를 끊고 가는거라 이렇게 전화로 인사하게 되서 미안하다."

너 한 명 알게 되었다는 것만으로 족하다... 늘 응원해줘서 고맙다... 한국을 떠나는 형님의 작별 인사였다. 어디서든 건강하시라고 대답했지만 채 반 년이 지나지 않아 형님을 다시 뵙게 된 건 한국의 모 병원 병실에서였다.

병상에 담담히 누워있는 형님을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그간 스트레스와 울분으로 쌓여온 마음의 병은 암이 되어 형님을 짓눌러 버렸고, 목숨을 살려보고자 한국으로 다시 발길을 돌린 것이었다. 이런저런 사연을 알고 있었기에 내 마음이 격해졌었나 보다.

형님은 의연했다. 죽을지 살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런 모습은 참으로 인상깊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원래 겁이 많은 사람. 하지만 단 한 명이라도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이 있으면 그 누구보다 용감한 사람이 되는 사람. 마음을 튼 사람에게만 조심스레 속내를 꺼내는 사람.

비가 내리던 어스름한 영등포 시장 골목. 없는 주머니를 털어 파전과 막걸리를 사주신 형님. 그날 나는 형님이 마음을 터놓는 몇 되지 않는 후배가 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파전의 지짐 소리에 꼴딱꼴딱 막걸리 따르는 소리. 그 모든 것이 영화처럼 스쳐갔다. 형님의 병상 앞에 서서 말이다.


형님은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나는 무엇보다 그것이 기뻤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연말 즈음 형님이 조촐한 식사 자리를 마련했다. 그 자리에 매일 홀딱 벗고 인사를 나누던 분도 있었고, 놀라운 것은...

김인섭 선수. 아니 김인섭 코치... 가 자리에 있었다.

대한민국을 울렸던 비운의 스타, 그리고 형님의 신념으로 자리잡았던 선수. 어찌하여 형님과 인연을 맺게 되었는지 궁금해 넌지시 물어보았다.

어느날 형님이 초면인 분과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다. 어떤 얘기가 오가던 중 또 김인섭 선수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게 되었고, 얘기를 흥미롭게 듣고 있던 상대가 이런 얘기를 꺼낸다.

  • 사실 제가 스케이팅 국가대표 출신입니다. 레슬링 부와 잘아는 친구들이 있는데 잠시 전화 좀 해도 되겠습니까?

한 두 다리 건너 김인섭 코치에게 전화 연결이 되었다. 식사 후 차를 마시는 자리에 김인섭 코치가 번개처럼 참석하게 되었고 마침내 형님은 마음속 우상을 대면하게 되었다. 형님 말로는 프로포즈 이후에 가장 가슴 떨리는 순간이라 하던데... 아마 내가 안정환 선수를 만나게 되었다면 그런 느낌이었을거라 싶었다.

그렇게 인연이 된 김인섭 코치, 우연히 알고 지내게 된 같은 건물 입주자 형님. 나도 그렇고... 그 자리는 이렇게 형님과 소소한 인연을 맺게 된 사람들만이 모이게 된 자리였다. 내게 그 자리가 뜻깊었던 것은... 그래도 형님이 살아남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살아야 인연다운 인연이 시작된다. 그래서 살아 남는다는 것은 참으로 소중한 것이 아닐까 싶다.

만날 사람은 다 만나게 되어 있다. 그러니 인연이 아니겠는가.


Comments 1


정말 감동적인 인연이 아닐 수 없네요.

11.07.2020 08:47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