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6.27 기록] 우유로 생각난 기억


연어입니다.


예전 근무했던 회사에서 상해에 법인을 설립했다. 나름 중국통(?)이라 불리는 사람을 현지 법인장으로 앉혔고 업무 보고도 받을겸 정기적으로 한국을 오가게 했다.

나중에야 눈치를 채게 되었지만 현지 법인장은 후임을 앉힐법한 상황을 미연에 막기위해 잔술수를 좀 부렸다. 매번 올때마다 조금씩 다른 테마였지만 하는 얘기는 비슷했다.

  • 이 사진 좀 보세요. 여기는 평소에도 공기가 이래요.
  • 이번에 어찌나 더웠는지 숨도 못 쉴 지경이었어요.
  • 여기엔 하도 음식에 장난을 쳐서 믿고 먹을 수가 없어요.

한 번은 우유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한 때 시끌했던 중국의 우유 품질 사건을 끄집어 내더니 상해에 거주하고 있는 대부분의 외국인들은 중국 우유를 믿지 못해서 비싼 돈을 주고서라도 수입 우유를 산다는 얘기였다. 그리고 본인도 한국에서 수입해 온 우유를 현지 우유보다 10배쯤 되는 가격으로 사먹는다 했다.

종종 본사에서 상해로 출장을 가게 되면 늘 이상한 음식점으로 데리고 간다. '이상하다'는건 엄청 비싸지만 한국인의 입맛에 결코 맞지 않은 메뉴라는 얘기다. 책상 빼곤 다 먹어볼 수 있는 나를 빼곤 다들 한 입 들고는 젓가락을 내려 놓을 정도였다.

메세지는 명확했다. 이 척박한(?) 곳은 내가 알아서 할테니 올 생각들 말고 신경들 끄셔라. 그런데 그게 주요했다. 다들 그런 곳에서는 근무할 수도, 살 수도 없겠다 했다. 나를 좀 경계한 눈치였는데, 이유인즉슨 중국 음식도 잘 먹고, 중국인 여자 친구도 있었고, 어설프지만 중국어로 재잘거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나를 회사에서 상해로 보낼까봐 꽤나 경계를 했던 것이다.

결국 일이 터졌다. 회사에서 법인장을 불신하게 된 일이 생겨버렸고, 법인을 정리하던가 법인장을 바꾸던가 하려는 상황까지 가 버리고 만 것이다. 그리고 어찌어찌하여 내가 상해로 급파되게 되었고 이런저런 수습을 해내야 했다.

일단, 현지에 적응하는 문제가 있었다. 정말이었다. 뭘, 어떻게 먹어야 할지부터 알아가야 했던 것이다. 시장도 다녀보고 대형 마트에도 다녀보았다. 그리고 궁금한 사항들을 메모해 뒀다가 한국에 있던 중국인 친구를 불러들였다. 이런저런 훼방도 있었고 한국인들의 이야기를 다 믿을 수 있는건 아니었기에 내 나름대로 가장 믿을만한 친구에게 부탁을 했던 것이다.

친구와 날을 잡아 온갖 식료품들을 다 헤집고 다녔다. 생소한 식품들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을 들었고 적정한 가격은 어떤지, 어떻게 하면 신선한 음식 재료를 구할 수 있는지를 배웠다. 그러다가 우유에 대해 배우게 되었다.

장난질이 심해서 먹으면 큰 일 난다는 중국의 우유. 럭셔리한 한국 수입 우유를 먹으며 현지 거주 비용을 청구하던 이전 법인장이 생각났다. 그래서 친구에게 많이 물어보았고, 나중에 따로 공부도 해 보았다. 내가 내린 결론은 굳이 중국 우유를 불신할만한 이유는 없다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중국 우유를 불신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은 있었다. 돈을 버는데 혈안이 되어있던 중국이다 보니 우유와 분유에 큰 문제가 발생했던 것이 사실이었으나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대대적인 단속과 혁신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비단 우유 뿐만이 아니라 생수 산업 쪽에도 같은 일이 있었다.

나는 일단 친구를 통해 믿을만한 우유 브랜드 세 가지를 알아 두었다. 그리고 각각의 역사와 제품 특징이 무엇인지 알아보기도 하였다. 간략히 소개한다면, 중국 우유 산업의 대부는 '이리몽고유업'인가 하는 회사다. 회사와 브랜드명에 '몽고'가 들어가 있으니 쉬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에 내몽골 지역이 있으니 이들로부터 기인한 우유, 요거트 등 유제품 역사는 결코 경시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겁나게 맛있다. 나는 늘 중국에 가는 지인들에게 몇 가지는 꼭 맛을 보고 오라 하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요거트다. (나는 아직도 요거트나 아이스크림 등 유제품을 다루는 기술은 중국이 더 나을거라 생각한다)

잠깐 이야기가 샜지만, 어쨌든 나는 친구 덕분에 값싸고 신선하며 품질 좋은 유제품을 맘껏 즐길 수 있었다. 이전 법인장의 1/10도 안되는 금액으로 말이다.

한번은, 홍콩이나 중국 본토 거래소에 상장되어 있는 기업들의 투자 가치를 순위로 매겨본 적 있다. 물론 이런 작업은 재미로 해 본 것이었다. 왜냐하면 중국 상장 기업들의 공시 자료를 액면 그대로 믿는 것은 리스크가 매우 크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재미로 한 번 해 보았고, 나름의 순위에서 1위는 공교롭게도 유제품 회사였다. 지금도 이 회사가 그만한 가치를 유지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산업 트렌드란 것도 있고, 특유의 뻥 공시자료도 있고 하니 말이다.

다만 찹잡한 것은, 중국에 그렇게나 경쟁력 있는 유제품 회사들이 있음에도 불과 얼마전 아이가 먹는 분유에 독성이 나오는 등 몰지식한 일이 여전하다는 것이다. 그런 사건의 파장으로 여전히 외국인은 물론이고 중국 자국민들 마저 국내 생산 먹거리에 불신을 남기고 있는 것이다.

오늘 보니 한국의 우유 가격에 대한 비밀을 살짝 풀은 기사가 있다. 한국의 우유 가격이 어느 정도인지 사실 알기가 어렵다. 내 경험상, 중국보다 비싸고, 유럽보다 비싸고... 뭐 그 정도는 알겠는데 한국의 기후와 토양이 목축업에 그닥 유리한 곳도 아니니 그저 그려려니 했다. 그런데 산업 측면에서 보면 나름 개선할 여지가 많은가 보다.

그 기사를 읽다 보니 위에 적은 에피소드가 생각났다. 중국에서 우유에 대해 설명도 듣고, 시음도 해보고, 자료도 찾고 이런 저런 확인을 거치며 이전 법인장에 대해 어찌나 욕이 나오던지. 먹는 걸로 장난치는 업주도 문제지만 멀쩡히 잘 만든 식품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해코지하는 것도 나쁜 것은 피차일반이 아닌가 싶다.


Comments 2


재밌게 잘봤습니다

26.06.2020 2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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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요거트가 좋군요. "몽골" 이라니 더 믿음이 가는..

27.06.2020 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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