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05.18 기록] 더 지난 "26년"


연어입니다.


[이야기 하나]

외삼촌과 (외)5촌당숙은 같은 날 입대를 하였다. 사촌 지간이기도 하고 어릴 때부터 늘 붙어 다니던 친구였기 때문이었다.

연병장에 줄지어 앉아 있을 때였다. 매사에 눈치 빠른 5촌 당숙이 외삼촌에게 넌지시 얘기를 꺼냈다.

"아까 저쪽에서 담배를 피다가 엿들었는데 오늘 줄 잘못서면 빡센데로 끌려간다더라. 아까 보니까 저쪽에서 짚차 한 대가 오던데 거기서 내린 사람들이 좀 수상쩍드라"

외삼촌과 5촌당숙은 한 줄에 서 있었다. 정말 줄따라 군 배정을 받던 시절이었다. 하필 그렇게 넘겨짚던 사람들이 그 줄 사람들을 데려갈 눈치였다. 삼촌 두 분은 재빨리 옆 줄로 갈아탔다. 원래 서있던 줄은 어디론가 이동했고, 줄을 갈아탄 두 분은 어느 공병부대로 배속 받았다.

원래의 줄은 어느 공수부대로 향하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광주 시민 진압에 투입되게 된다.


가끔 내게 해주던 이 이야기를 조촐한 회식 자리에서 조기 축구회 친구분들에게 하셨나 보다. 말없이 이야기를 듣던 한 분이 자신의 이야기를 꺼낸다.

그 분은 광주 시청에 근무하고 있었다. 군인들이 물밀듯이 들이닥쳤고 겁에 질린 사람들과 함께 몸을 피해야 했다. 급한 마음에 사무실 옷장 캐비넷에 몸을 숨겼다.

누군가 워커발로 문을 박차며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는 총을 갈기기 시작했다. 캐비넷은 주된 표적이었다. 총을 한 바탕 갈긴 군인이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나가버렸다. 몸을 숨긴 캐비넷이 총알 세례를 받았지만 그 분은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그러나 함께 캐비넷에 몸을 숨겼던 동료들은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담담히 이야기를 듣던 외삼촌이 맥주잔을 기울이며 얘기를 꺼냈다.

"그 때 줄을 갈아타지 않았으면 내가 바로 자네에게 총부리를 겨눴을지도 몰랐겠구만. 그래도 그런 일 없이 이렇게 먼 타지에서 함께 축구도 하고 맥주도 한 잔 할 수 있게 됐네. 건배나 하지."


[이야기 둘]

2012년, 영화 '26년'이 개봉되었다. 정확히 기억 나지는 않지만 여자친구가 먼저 보자고 했던 것 같다. '주몽'으로 유명했던 한혜진의 얼굴이 포스터에 보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외국인이었던 여자친구와 '26년'을 보러가는 기분은 참으로 묘했다. 북경 출신의 이 친구에게서 '천안문 광장'에서 벌어졌던 일련의 얘기를 들어본 적은 없었다. 그녀는 미처 피우지 못한 천안문의 봄을 잘 알지 못했다. 아마 제대로 된 교육조차 받은 적이 없었을 것이다.

영화에 대한 배경지식이 부족한 그녀는 영화 상영 내내 내게 이것저것 물었다. TV 속에 나오는 사람이 누구야? 지금 왜 사람들이 다들 웃어?

창가 커튼 사이로 살짝 보이는 대머리. 모든 한국 사람들은 그 장면이 누구를 의미하는지, 또 무엇을 의미하는지 안다. 대통령과 닮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연기 인생을 접다시피 해야했던 배우가 있었다. 그 배우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꽤 비슷한 배우가 섭외되어 종종 화면에 비추었다. 그런 배우를 섭외하는 것 자체가 묘한 기분이 들게하는 것을 외국인인 그녀가 알리는 만무했다.

영화 초반에 애니메이션으로 처리된 장면들이 나온다. 잔혹하다고도 할 수 있고, 사실에 비해 상당히 순화되었다고 할 수도 있는 장면들이다. 친구는 충격을 좀 받은 듯 했다.

영화 막바지엔 펑펑 운다. 역사적 배경을 알든 모르든 이성과 감정을 갖춘 사람이라면 마음에 울림이 있을 내용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영화가 끝나고, 폭풍 질문 세례에 하나 하나 대답하느라 진땀을 뺐다. 그러나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한국의 문화에 큰 관심을 두는 친구였지만 역사 얘기는 쉽지 않았다. 한국과 중국 사이엔 묘한 역사적 경계선이 있기 때문이었다.

중국어 강사이기도 했던 그녀는 이후 대부분이 직장인인 제자들에게서 한국의 근현대사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특히 방송국 관계자들이 있어 일본에 대한 이야기나 군부에 대한 이야기를 꽤 심도있게 들었다고 했다.

모르는게 문제다. 알면 판단할 수 있다. 무엇이 옮고 그른지를. 무엇이 잘못이고 어떻게 고쳐가야 할지를.


[이야기 셋]

지역 감정이 서슬 퍼렇게 남아있을 때였다. 경상도 토박이 말씨에 군복 차림의 육사 장교 한 명이 버스를 타고 광주에 내렸다. 경상도 사람이 전라도에 가면 돌맞아 죽는다는 흉흉한 얘기가 (경상도에) 돌던 시절이다.
영남출신 장교로서 대통령 자리까지 앉았던 선배들이 저지른 일들을 차마 모른척 할 수 없었다. 그래서 휴가차 직접 광주를 찾았고 광주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죽지 않으면 다행이라 여겼는데, 광주 사람들은 그를 기특하게 생각했다. 막걸리 한잔 씩을 권하면서 그날의 이야기를 나누어어 주었다.

장교는 그 때 사람로 부터 '님을 위한 행진곡'도 배웠다. 군가를 입에 달고 사는 그였지만 광주 시민들이 마음 절절히 부르는 그 노래를 가슴 속에 담아두지 않을 수 없었다. 대구와 육사 출신인 사람 중에 자기만큼 그 노래를 잘 부를 줄 아는 사람도 없을거란 얘기를 들은 적 있었다. 나는 그 말을 믿는다.

많은 시간이 지나 장교는 정치의 길을 걷고 있었다. 내가 그를 눈여겨 보게 된 것은 그가 A4 두 장에 직접 쓴 5.18 기념사를 읽으면서였다. 지금껏 봐온 그 어떤 글보다 그의 추추모글은 울림이있었다. 이유가 궁금했고 그로부터 위와 같은 사연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광주가 아닌, 대구 경북에서 광주 민주화 운동 진압에 대해 사과하는 최초의 정치인이 되고 싶다".

그가 입버릇처럼 얘기했던 말이었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오늘은 광주 민주화 운동 40주년의 날이다. '26년'이었던 영화 제목으로 치자면 아픔은 14년이 더 흘렀고 머지 않아 두 번의 26년을 맞이할만큼 긴 시간이 흘렀다.

원흉들은 일말의 반성도, 참회도, 아니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역사란란 것이 굽이치 하더라도 제대로 흘러가는 것이라면 진실은 밝혀질 것이고 잘못을 뉘뉘우치며 방향을 바로잡자 노력할 것이다다.

연이은 거 패배로 민심을 뼈저리게 읽었어야 할 제1야당이 어떤 역사적 행보를 내디딜지 주목되는 하루가 아닐 수 없다. 오랜 시간이 흐르는 동안 지금만큼 분위기가 무르 익은 적도 없기 때문이다.

지금마저 놓친다면 단순한 용기 부족 이상의 평가를 영영 피할 수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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