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10.23] 이거 사뭇 놀랍군요 - 컴퓨터 역사 한 켠


연어입니다. 1982년 10월에 '보물섬'이라는 만화 잡지의 창간호가 나왔습니다. 이 월간 만화 잡지는 '둘리'나 '하니' 같은 히트작들을 연재하기도 했죠.

등학교 2학년이던 저는 창간호부터 빠짐없이 보물섬을 모아뒀는데, 3~4번째쯤? 그러니 1982년 12월호나 1983년 1월호에 처음보는 광고가 한 컷 실려 있었습니다.

  • 기초부터 쉽게 배우는 BASIC

이것이 제가 프로그래밍이란 것을 처음 접한 계기였습니다. 컴퓨터란 것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던 때였지만 왠지 저 책을 꼭 봐야겠다는 마음에 '아빠'를 졸라 한 권 구할 수 있었죠.

호빵을 먹으며 첫 페이지를 넘긴 기억이 있으니 1983년으로 넘어가는 추운 겨울이었을 겁니다.


■ BASIC은 마스터, 그러나?

영어를 배운적도 없고 컴퓨터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초등학교 2학년 학생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쉽게 잘 정리한 책이었으니, 당시 저자에게 아직도 고마운 마음입니다. 모름지기 책은 그렇게 써야죠.

책을 읽으며 프로그래밍이란 것이 무엇인지, 컴퓨터란 또 무엇인지, 논리적 흐름, 플로우 챠트 등 당시 학교에 가면 절대 배울 수 없는 또 하나의 세상을 공부한다는 기분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컴퓨터도 없이 책으로만 프로그래밍을 익혀야 하니 실전으로 확인하고 써먹어보고 싶어 죽겠다는 것이었습니다.

10 A = 10
20 B = 20
30 C = A + B
40 PRINT C
50 END

RUN

뭐, 대충 이런 코딩이 있다고 합시다. 책에서는 저렇게 코딩을 넣고 RUN(실행)을 쓴 후 리턴키(당시엔 ENTER 보다 RETURN이란 단어를 더 많이 썼던 듯)를 치면 '30'이란 값이 모니터에 출력 된다는데...

도통 컴퓨터가 손에 없으니 확인할 길이 없는 겁니다. 뭐, 어쩝니까? 그래서 그냥 천자문에 사서삼경 읽어가듯 페이지만 무작정 넘겼지요.

INPUT문, IF ~ THEN 문 등등 명령어도 익혀가고 플로 챠트를 작성하는 법도 나름 마스터했다고 생각했지만 운전면허 책만 보고 자동차 운전을 익히는 꼴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당시엔 너무 어려서 세운상가 같은 컴퓨터 마켓이 있는 줄도 몰랐고, 그냥 이 세상 어딘가에는 컴퓨터란 것이 있으니 언젠가 만져볼 날이 있으려니 생각하며 열심히 공차고 떡볶이 먹으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 첫 코딩, 오락실의 추억

그 또한 겨울이었는데, 1983년 말이거나 1984년 초쯤이 아닐까 합니다. 6학년 생활부 선배들의 눈을 피해 조심스레 드나들던 오락실 한 곳에 일반 오락기와는 다른 오락기가 두 대 들어왔더군요.

바로 일본에서 막 시작되었던 MSX 기종 두 대를 오락기로 둔갑시켜 업장에 배치해 두었던 것입니다. 당시 오락 한 판이 50원 하던 때인데 (작은 기종은 30원) 50원 동전을 넣으면 선택 옵션이 주어졌습니다.

  • 게임 한 판 할래?
  • 아니면 4분 동안 프로그래밍 해볼래?

50원으로 4분 동안 프로그래밍을 해 볼 수 있는 기회! 이것이 제가 태어나서 처음 컴퓨터 자판을 두들겨 볼 수 있었던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당시 학생으로서 거금인 50원 동전 두 개를 털어 놓고 8분을 확보하여 그간 확인해 보고 싶던 코딩 몇 가지를 후다닥 해보았습니다.

  • 정말 30 값이 출력되는구나!
  • HELLO가 정말 화면에 찍히는 구나! (PRINT "HELLO" 뭐 이런거 넣으면)

■ 당시의 업계 거장들

우연히 처음 손 댄 기종은 일본발 MSX 기종이었지만, 사실 저는 일찌기 애플빠여서 이후 세운상가를 드나들며 당시 조립되어 팔리던 애플2+ (미국에서는 애플2e가 인기였다지만 한국은 한 단계 낮은 버전이었음)를 뻔질나게 만져보고 다녔지요.

그런데 오늘 문득 이 글을 쓰게 된 것은 지금도 유명한 IT 거장들이 당시 떠오르는 별들로서 명성을 날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 스티븐 잡스
  • 스티브 워즈니악
  • 빌 게이츠

여기 까지는 잘 아실터인데... 저도 몰랐던 사실을 오늘 하나 알게 되었네요. 아까 우연히 MSX에 대한 궁금했던 자료를 찾던 중에 말입니다. 바로,

  • 손정의 !

■ 일본 MSX 소프트웨어를 공급했던 손정의

MSX는 사실 별거 아닙니다. 일본과 미국(마이크로소프트) 합작으로 나름 'MSX'라는 8비트 표준을 제창하고 '다들 따르라'를 외쳤는데 진짜 따라간 업체들이 좀 있긴 합니다. 단, 미국은 안 따라갔죠.

  • 일본 : NEC, 샤프, 후지쯔
  • 한국 : 대우, 금성, 삼성
  • 네덜란드 : 필립스

표준이란게 무색한 것이, 미국에서는 이미 IBM 호환 기종도 대세에 들어서기 시작했고, 개인용(퍼스널) 컴퓨터 시장에서는 오픈 아키텍쳐의 '애플 컴퓨터'가 시장을 왕창 먹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우리는 그 얘기를 하려는게 아니고. 일본 업체들이 MSX 컴퓨터를 생산하면서 겪은 어려움이 컴퓨터 제조에 뛰어든 것이 컴퓨터 전문 업체라기 보다는 일반 가전 업체다 보니 하드웨어는 어떻게든 만들어서 공급하긴 하지만 마땅한 소프트웨어 지원이 없었나 봅니다.

그 때 이 업체들에 소프트웨어를 진득하게 공급한 사람이 있으니, 그가 바로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이라고 하네요. 당시에도 회사는 소프트뱅크였고 말입니다.


■ 명불허전이로세

하.. 아이폰으로 아직까지 우리 가슴에 남아있는 IT의 별 스티브 잡스, 걸핏하면 미국 최고 부자 리스트에 뜨는 빌게이츠, 그리고 소프트뱅크 펀딩으로 투자업계를 쥐락펴락 해보려는 손정의까지... 40년 가까운 과거 시절에 이미 한가닥씩 하던 분들이란 사실이 참으로 놀랍습니다.

거꾸로 얘기한다면, 수많은 업체들이 생겼다 사라진 IT업계에 (잡스옹은 별세하셨지만) 아직까지 빛을 발하고 있는 이들이야말로 어쩌면 세상을 최전선에서 개척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그 존재감을 키우고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손정의 회장이 과거 청와대로 부터 초청을 받았을 때 빌 게이츠 회장을 자신의 친구라며 데려왔다는 것이 이미 이 시절부터 업계를 이끌어 가던 거두들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게 아닌가 싶습니다.


Comments 5


@tipu curate

22.10.2019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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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pvoted 👌 (Mana: 5/15)

22.10.2019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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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22.10.2019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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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걸 베이직이라고 읽는 사람들을 보고 베이식이라고 읽어야 옳다고 주장하던 10대의 제가 있었죠. 지금은 베이식이 너무 어색한데 말이죠. 뭐 물론 저는 MS-DOS 3.0배우느라 손도 못댔던 베이직이지만요.

22.10.2019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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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식' 보다는 낫네요. ㅋㅋ

DOS 부터 하셨으면 IBM 쪽부터 건드리신 ㅎㅎ
당시 애플은 딱히 오퍼레이팅 시스템을 다루기보다는 플로피 디스켓으로 프로그램을 직접 돌려 구동시키는 방식 위주였던거 같아요.

와.. 아직도 기억남 ;;

23.10.2019 0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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