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막1장] 독서쟁이 75 - 언어의 온도(이기주 저) 20_노력을 강요하는 폭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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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찍질이란 뜻의 '위플래쉬'라는 영화가 있다. 제목 그대로 채찍을 휘둘러대는 영화다. 스승이 제자에게, 감독이 관객에게.
저예산 영화인 데다 줄거리도 비교적 단순하다. 최고의 재즈 드럼 연주자가 되려는 대한 신입생 앤드루가 교내 밴드에 합류한다. 지도 교수는 스파르타식 교육으로 악명이 높은 플래처.
플래처 교수는 칭찬과 재능과 꿈을 좀먹는다고 여기는 사람이다. "그만하면 잘했어"라는 표현을 가장 혐오하는 그는 학생들의 달팽이관에 채찍질하겠다는 듯 연습 도중 온갖 폭언을 날린다. 누군가 작은 실수라도 저지르면 "박자가 틀렸어" "바고""멍청이"라고 으르렁댄다.
그가 자신의 혀로 휘두르는 채찍은 제자들의 귀뿐만 아니라 자존심을 후려친다.
누군가 내게 "플래처 교수처럼 학생을 극한까지 몰아 붙이더라도 잠재력을 끄집어내기만 한다면 뭐 그만 아닌가요?" 하고 묻는다면, 난 "반대일세"라고 답할 것이다. 노력은 스스로 발휘할 때 가치가 있다. 노력을 평가하는 일도 온당하지 않다.

일 때문에 연락하는 사람 중에, 종종 내 노력에 등급을 매기려는 이들이 있다. 그런 관심은 정말이지 부담스럽다.
상대가 부담스러워하는 관심은 폭력에 가깝고 상대에게 노력을 강요하는 건 착취에 가깝다고, 나는 생각한다.
영화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이 하나 있다. 앤드루가 사촌과 성공의 기준을 두고 언쟁을 벌이자,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아버지가 한마디 쏘아붙인다. "서른넷에 빈털터리가 되고 술과 마약에 취해 죽는 게 성공이라고 할 수 없지. 안 그래?"
유명 재즈 연주자인 찰리 파커의 삶을 빗대. 드럼 연주자가 되겠다는 아들의 꿈을 에둘러 평가 절하한 것이다. 그러자 앤드루가 눈을 부릅뜨고 대든다.
"전 서른넷에 죽더라도 사람들이 두고두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될 겁니다!"

영화라서 가능한 멘트였으리라. 뭐, 그렇다 해도 이 얼마나 순수하고 절박한 대사인가. 영화는 우리가 현실에서 감히 토해내지 못하는 말을 대신해주는 것 같다.
그뿐이랴. 게다가 어떤 영화는, 어두운 방에서 문을 열면 빛이 들이닥치는 것처럼, 순식간에 어린 시절 기억을 되살려내 마구 솟구치게 한다.
영화를 관람하고 극장을 나서는 순간, 마음 한구석에 은밀하게 숨겨놓았던 스위치 같은 게 '딸각'하고 들어오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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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4.2021 0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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