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들아'로 시작하는 그 글에 대하여


저는 관계와 위계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이미 상당한 비판의 대상이 된, 특정인을 대상으로 하는 글을 올리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란 생각도 들지만, 이 글이 한 개인에 대한 비판이라기 보단, 위계에 대한 성찰이라고 봐줬으면 좋겠습니다.

'얘들아'로 시작하는 그 글에 대해

  1. 이젠 태도가 중요한 시대다. 나는 관계에서의 태도가 위계적이고 폭력적이면서 고고한 가치를 지향한다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 MBC 손정은 아나운서의 글에서 많은 사람들은 그 글의 내용보단 '꼰대적 태도'를 불편해 했다. 나 또한 그의 태도가 몹시 불편했다. 특히 그 '꼰대적 태도'는 한국 사회에서 늘 나이가 어리고, 연차가 낮은 사람에게만 향한다. 정치적 반대편에 있거나, 아무리 증오하더라도 '재철아, 장겸아'라고 하진 않을 것이다. 비판의 말을 하더라도 "김재철 사장님. 그러시면 안됩니다"라고 극존칭을 쓰지 않았을까.
  2. 과거엔 태도는 부차적이었다. 매우 불손한 태도로 바른 말을 하는 사람과 태도는 정중하되 허튼 말만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전 같았으면 전자의 손을 들어줬을 것이다. 그때엔 신분제 사회의 연장선상에 있기도 했고, 엘리트들은 젊어서부터 특수한 계급에 편입해 여타 사람들을 하대하는 것이 일반적이기도 했다. 그래서 '태도'가 부차적이었다. 그런데 이젠 그렇지 않다. 태도가 나쁜 사람이 옳은 얘기를 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이미 손 아나운서의 글을 보고 '저런 오만한 모습 보이라고 MBC 파업을 지지했나'라는 자조적 의견도 나온다. 그런 의견이 얼마나 합리적이냐를 떠나서 MBC가 신경써야하는 여론이다.
  3. 좀 더 내 생각을 얘기하자면 태도는 정말 중요하다. 손 아나운서의 태도로는 그가 말한대로 '만약 법이 너희의 편이라면, 그때는 아나운서국 선후배로 더 많이 대화하고 함께 나아갈 길을 모색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를 행동으로 실천할 수 없다. 진정 대화를 하려면 '선후배'를 떠나야 하고, 사람에게 '위아래'가 있단 인식을 버려야 한다. 사람에게 위 아래가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 소통은 막히게 마련이다. 좀 다른 얘기지만, 만일 노사협상에서 노동자에게 반말하는 사측 인사가 있다면, 그 대화의 장은 박차고 나오는 게 맞다. 상호 평등하단 생각으로 존중하는 태도가 대화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대화가 시작된 이후에도 태도는 중요하다. 서로의 의사를 표명하고 반영하는 과정을 '담론화'라고 하고, 언론이 사회에서 하는 역할이 바로 그것이다. 언론이 독자에게 보여주는 말과 글에는 특정인을 존대하거나 하대하지 않는다. 독자가 내용을 이해하기 이전에 권력관계를 인지하면 내용이 왜곡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무리 SNS라도 해도 언론인이라면 집단을 대상으로 '하대'하는 말을 쓰면 안 된다. 게다가 사적인 글이 아니라 공적인 사안을 다루는 글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독자들은 저 글의 내용보단, 저들의 선후배 관계가 먼저 들어온다. 그게 언론인이 피해야 할 왜곡이다.
  4. 손 아나운서의 글을 일일히 따지고 싶진 않은데, 두 부분은 크게 걸린다. 하나는 '왜 파업에 동참하지 않았냐'는 부분이다. 원문을 그대로 인용. "그 당시 너희와 같은 처지였던 많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본인의 신념을 이유로 제작 거부에 참여하기도 했다. 누군가는 초인적인 덕성이 있어야 그런 행동이 가능하다고 말하지만, 그렇게만 말하기에는 꽤나 많은 이들이 자신의 신념을 따랐고 그 작은 힘들이 모여 MBC는 바뀔 수 있었다."
    사실 이 부분은 언론사 취업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교재로 보여주고 싶을 정도로 글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다. 글의 목적은 '계약직 아나운서의 복직 소송에 동의하지 않는다', '직장괴롭힘방지법의 대명사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왜 파업에 참여하지 않았냐"는 손 아나운서가 평소에 하고 싶은 말이었겠지만, 이 부분을 덧붙이는 순간 손 아나운서가 계약직들의 '계약연장', '직장괴롭힘방지법 신고'에 동의하지 않는 이유가 '파업에 동참하지 않아서'로 인식된다. 비슷한 논리를 다른 기업들에게 확장하면, 비정규직으로 채용된 이들은 채용 즉시 회사의 특정 편에 서지 않으면 계약연장이든, 괴롭힘방지를 위한 법적인 조치에도 지지를 받을 수 없다는 의미가 된다.
    하나 더 그의 글에서 걸리는 부분은 다음 문장이다. "너희의 고통을 직장괴롭힘의 대명사로 만들기에는 실제 이 법이 보호해야할 대상이 우리 사회에 차고도 넘쳐, 마음이 아플 뿐이다." 이 부분은 전형적인 '근거가 빠진 일방적 주장'이다. '너희의 고통'이 무엇이고, '이 법이 보호해야 할 대상'이 누구인지, 비교해볼 때 '너희의 고통'이 왜 법의 보호대상이 아닌지 등을 제시하지 않았다. 모든 글이 성실할 순 없으나, 누군가를 공격하거나 아프게할 수 있는 글은 최소한의 성실성을 갖춰야 한다.
  5. 끝으로 직장괴롭힘에 대해. 난 MBC가 계약연장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본다. '고용'은 복잡한 문제다. 일도양단으로 선악을 가를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이미 법원이 판결 전까지 그들을 '근로자'라고 결정했으니, MBC는 최소한 자사의 직원들을 괴롭히지는 않아야 한다. 그럼 무엇이 괴롭힘인가. 이것도 사람마다 기준이 다르겠지만, 생각보다 쉽게 기준을 찾을 수도 있다. MBC 파업에 주도했던 이들이 과거에 받았던 대우를 부당하다고 주장했다면, 같은 대우를 다른 이에게 해서는 안 된다. 업무에서 배제하고, 사내 전산망 차단 등은 과거에 파업 핵심 인사들이 부당하다고 주장했던 행위들이었다. 게다가 많은 기업들이 아직도 사람을 내보내고자 할 때엔 협상을 하는 것이 아니라, 괴롭히기를 택한다. 그것이 비용이 적게 드는 유효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괴롭히기'는 개인의 인격을 파탄낼 뿐 아니라, 구조적으로도 기업이 비용을 아끼는 수단으로 활용되는 것이 현실이다. MBC가 자사의 직원을 괴롭히기를 택하는 것은 사회적인 맥락에서도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곱씹어봤으면 한다.

6.여기까지 쓰니, 마치 계약직 아나운서들을 편든다고 오해할 수도 있겠다. 주의 깊게 읽은 분들은 아시겠지만, 전혀 그런 취지의 글은 아니다. 나도 기자 시절에 MBC 파업을 조명하는 기사를 여러 건 썼고, 전종환 아나운서가 쓴 고뇌에 찬 글도 공감하며 읽었다. 무엇보다 상처 입은 자가 논리적으로 사안을 봉합하고, 미래로 나아가기가 힘들다고 생각한다. 아나운서국에서 발생한 그 끔찍한 고통들을 내가 감히 가늠할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이런 긴 글을 쓰는 이유는 우리 사회가 관계에서의 '위계'와 '폭력'에 대해 좀 더 예민해졌으면 하는 바람에서다. 피해의식이 큰 사람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기 쉬운 것이 사실이지만, 공적인 사안일수록 그것을 경계해야 설득력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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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2


역시 맞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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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08.2019 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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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약연장을 하지 않으려면 확실한 사유가 있어야겠죠.
수많은 쪼개기 계약들도 생각나고 참 답답해집니다.

03.08.2019 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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