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에서 진행했던 토론수업 강의 내용


10년도 더 전, 대학생 시절에 명지고등학교의 클럽활동(CA) 수업시간(아마도 고1학생들)에 가서 한 학기 동안 토론수업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첫 수업용으로 이런 내용의 강연을 준비했었다. 오랜만에 이 자료를 발견하고, 내가 이런 생각을 했고, 이런 말을 준비했었구나,라고 느낄 정도로 생경한 텍스트. 자료용으로 저장.


수백년간 이어졌던 종교전쟁, 600만명이 죽었던 유태인 학살, 다른 인종이라는 이유로 무조건 죽였던 인종청소.
지금도 수단이라는 나라에서 행해지고 있죠. 지난 50년전 100년전의 제국주의 전쟁.

이 모든 것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신념이 사람을 죽였다는 것입니다.

보통 어떤 사안에 대한 생각을 입장 이라고 하고, 그 입장이 강해지면 신념 이라고 하죠.
그리고 우린 때론 강한 신념을 가진 사람을 만나곤 합니다.
강한 신념, 그 자체가 문제는 아니지만, 그 신념이 어떻게 형성되었느냐는 중요합니다.
어떤 신념을 사람을 죽이기도 하니깐요.

신념이 있는 분에게, 혹은 입장이 있는 분에게 왜 그런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 물어본다면 어떤 답변이 나올 것 같아요? 아마 자기 나름의 생각이 있는 분들이 있는 반면에 제대로 답변을 못하는 분들도 있을거에요. 왜 그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 답변하지 못한다면, 그건 입장이 아니라 호불호인 경우가 많아요.

자 그러면 우리는 어떤 입장에 서야할까요. 그것을 알려면 '입장'이란게 무엇인지, 그 실체를 근본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어요.

세상에는 수많은 사안들이 있고, 이 많은 사안에 사람들은 어느 쪽을 지지하기도 하고 별 생각이 없기도 해요. 특정한 쪽을 지지하는 것을 입장이라고 하죠.

자 예를 들어볼게요.
[사형제 폐지해야 한다]
[안락사를 허용해야 한다]
[4대강 사업을 시행해야 한다]
[국가 보안법을 폐지해야 한다]
[미디어법 통과 시켜야 한다]
여러분들은 이런 의제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학생들 몇몇에게 의제들에 대해 생각하는 것들 질문)
(다시 또 질문하여 구체적인 쟁점 잡아보기)

결국 마지막 쟁점은 가치의 선택으로 귀결되죠?

사형제는 범죄 예방 응보라는 가치와 생명이라는 가치가 충돌하고, 안락사는 생명권과 자기 결정권의 충돌, 4대강 사업은 경제와 환경의 충돌. 이런 식이죠.

결국 입장이란 가치에 대한 선택이에요. 그리고 가치라는 것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정답이 없는데 내 주장에 설득력이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할까요?
내가 주장하는 가치가 지금 이 시점에, 그리고 우리 사회에선 더 중요하다는 것을 제시하는 정도에요.
그리고 '가치의 우선순위'는 시대나 상황에 따라 바뀔 수 있습니다.

그래서 토론할 때 가장 중요한 자세는 바로 정답은 없다, 내 생각이 틀릴 수 있다, 상대의 말이 일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평소 토론에 대해 떠오르는 이미지가 뭐죠?
(학생들에게 물어보기) 싸움, 경쟁, 대결 등등

우리는 토론할 때 내 생각이 틀릴 수 있다가 아니라 이겨야 하는 경쟁이고 싸움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물론 토론에는 이런 부분도 있어요. 하지만 그건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전부가 아니에요.

보통 토론을 잘 하는 사람을 생각하면 누가 떠오르죠?
말을 거침없이 하고, "그건 아니잖아요”, “설득력이 떨어지는 주장 같은데요”
이러면서 상대방이 할 말 없게 만드는 사람? 이게 토론 잘 하는 사람인가요?
제 생각은 다릅니다.

사실 토론할 때 가장 안 좋은 자세는 '내 생각이 무조건 맞으니까 너네를 한번 제압해 보겠다'는 태도에요.

그렇게 할거면 토론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따로 한번씩 발언을 하면 되요. 어차피 서로 들을 필요가 없으니까요. 서로 끊지 않고 쭉 한번씩 말하면 됩니다. 말을 섞을 필요가 없어요.

하지만 토론이란 그냥 말하기가 아닙니다. 토론의 가장 기본적인 성격은 '대화'입니다. 대화는 말하기만 있는게 아니죠. 말하기 말고 뭐가 있을까요? '듣기'가 있습니다. 자 그럼 듣는다라는 건 뭘까요? 어떤 의미일까요.

(둘러보면서)
여러분 지금 제 말을 듣고 있죠?
제 말을 어떻게 듣고 있나요?
여러분이 제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면

여러분은 지금 저를 경험하고 있는 셈입니다.
여러분이 제가 되는 그런 경험을 해본 셈이죠.

그래서 듣기의 최고 경지는 공감하며 경청하는 '공감적 경청'이에요. 상대방의 입장이 되보는 것이죠.

진정한 토론도 마찬가지입니다.
상대방을 경험해보는 것,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것, 자기 자신이라는 테두리 밖으로 나가보는 것이

바로 우리가 토론을 하는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본다는 측면에서 진정한 토론은 근본적으로 윤리적인 행위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얘기한 걸 간략히 요약해보면 입장이란 가치에 대한 선택이다.
가치에는 정답이 없으므로 토론할 때의 기본자세는 상대방의 말에도 일리가 있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것이에요.
그리고 진정한 토론이란 상대방의 입장을 경험해 보는 것이구요. 이렇게 해야 토론에서 의견의 질이 높아지고, 아울러 설득력도 커집니다.

지금 고등학생인 여러분은 아직 세상에 나가면 뭐가 있는지, 내가 뭐가 되고 싶은지 아직 잘 모르겠죠?
사실 저도 그랬어요. 저는 공대에 나와서 지금 언론사 입사를 준비하고 있어요. 제가 이런 선택을 하게 될 줄은 고등학생 때 전혀 예상치 못했어요. 이럴 줄 알았으면 고등학생 때 이과를 선택하지도 않았겠죠.
그리고 만일 진로를 결정했다고 하더라도 그게 진짜 좋은건지, 나에게 맞는건지 잘 모를 거에요.

여러분이 지금까지 17년동안 만들어온 '자아'는 여러분이 지금껏 만나고, 겪어온 다른 사람들에 의해 형성되었습니다. 그건 여러분 뿐 아니라, 누구나 마찬가지에요. 저도 제가 지금껏 만나온 사람들로 제가 형성됐죠. 그게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롤모델이든 반면교사든, 아주 일부의 영향이든 간에, 저에게 영향을 준 모든 사람들이 내 자아의 일부를 차지하고 있어요.

그걸 George Hubert Mead라는 사람은 이렇게 개념화했어요.
나란 일반화된 타인들인다. "me = the generalized others"

조금 어려운 얘기일지 모르는데요. 이런 얘기를 한 이유는 우리가 왜 토론을 해야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에요.

세상을 아직 겪어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보면 여러분은 선택을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지금 이과와 문과를 결정해야 하고, 어느 대학을 갈지, 어느 과를 갈지도 결정해야 해요.

그래서 한국 학생들이 대학에 가서 많이 방황을 합니다. 그냥 열심히 공부를 해왔는데, 세상이 어떤지,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잘 모르는 거에요. 저 뿐만이 아니라 제 주변의 다른 대학생들도 비슷한 어려움을 겪어요. 대학만 가면 많은 부담을 덜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더라고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공부 열심히 하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 근본적으로 내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잘 생각해봐야해요. 또 그것을 알려면 타인을 경험해봐야 합니다. 그래야 제 자신의 경계가 넓어지고, 자아가 확장되면서 진정한 자아를 찾을 수가 있어요.

저는 타인을 잘 경험할 수 있게 해주는 활동, 자아의 경계를 넓히는 활동이 토론, 듣기, 독서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앞으로 하는 토론 수업을 그저 주장하고 반박하는 활동이 아니라, 타인을 경험해보는 행위, 공감하고 경청하는 행위라는 인식을 가지고 임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앞으로 어떻게 수업을 진행할지 얘기해볼게요. (강의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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