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규모 자영농노의 삶-장사일기> 허리케인 트라우마 1 - 중국의 태풍 레키마가 남일 같지 않은것, 과부될뻔한 썰


오전 6시10분 출근, 오후 4시30분 퇴근
53인분 판매

월요일에는 주변에 문닫는 가게들이 많아서 손님이 항상 다른 날보다도 적은 편인데
바쁜듯 안바쁜듯, 그럭저럭 일일 목표매출을 채운 날.

새벽 4시 반쯤 깼다.
기상시간까지 한 시간 정도 남아서 다시 자려고 자려고 노력했으나 쉽게 다시 잠에 들지 못하고
뒤척거리다 겨우 다시 잠들었는데 꿈자리가 영 뒤숭숭 한것.
간밤에 자기 전에 중국에 태풍 레키마 피해 관련 영상을 보고 자서일까.
보나마나 개꿈이지만 험난한 산을 오르고 절벽 폭포 같은데서 사람들이 막 떨어지고 이런 꿈이었다.

아무튼 중국 태풍 피해 영상을 보는데 소름이 쫙 돋는것.
팔에 닭살이 쫙 돋는것이다.

*긴글 주의 (바쁘신분들은 그냥 사진으로 결과만)

한국에서 근 30년을 살면서 자연재해 같은것을 별로 겪어본 적이 없었다.
태풍이나 홍수, 폭설, 한국에서 꽤 흔한 재해임에도 살면서 직접 눈으로 보고 그런적이 없었는데
이곳에 와서 한 방 크게 맞았다.
2017년 9월 허리케인 Irma가 우리가 사는 섬을 정통으로 통과하는 일이 있었다.
허리케인은 세력에 따라서 카테고리 1부터 5까지 나뉘는데 1이 가장 약하고 5가 가장 쎈것이다.
Irma는 카테고리 5 +a 였다고 사람들이 공공연하게 얘기 했던게
풍속 측정하는 기구 조차 다 날아가버려서 풍속을 잴 수가 없었다고.
자연재해라는게 정말 남의 나라 일이었던 나에게는 허리케인이 뭘까? 이런 호기심이 더 많았고,
사람들 하는 말이 집에 있으면 웬만하면 안전하다고, 대신 창가 근처에는 가지 말라는 말을 듣고
마치 신기한 일이라도 기다리는 아이마냥 덕분에 가게문 닫고 쉰다고 좋아했다.

허리케인 이후에는 정전, 단수가 매우 높은 확률로 지속되니
충분한 식수와 불을 밝힐 수 있는 손전등, 양초, 가스 버너 같은 것들을 꼭 구비해 두라고 해서 우리는 그 정도 준비 했던것 같다.
아참, 비상식량으로 파스타랑 소스 같은것을 잔뜩 사다 놨었던것 같다.
허리케인이 오기 전 하루 이틀 전부터 사람들이 약간 패닉이 왔다고 느꼈던게
처음에는 먼 바다에서 그렇게 큰 규모로 시작한게 아니니까 약간 안일하게 있다가
카테고리 3-4 이야기를 하니 그 때부터 사람들이 미친듯이 대비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대비라는게 싸이클론 셔터가 있는 집들은 그걸로 창문이랑 대문을 다 막지만 셔터가 없는 집들은 합판으로라도 막아야 해서
사람들은 그런것들을 구하러 다녔다.
그 때 우리가 살던 집에는 허리케인 셔터는 없었다.
대신에 발코니로 나가는 유리문이 엄청 무겁고 두꺼웠다.
가게에는 셔터가 있긴 했지만 싸이클론 셔터는 아니고 그냥 외부 침입정도 방지하는 셔터라고 해야 하나 그물형으로 된 철셔터가 있었다.
허리케인이 오기 바로 전날 오전에 급하게 하드웨어 상점에 가서 6-7미리 정도 두께가 되는 합판을 사와서 가게 정면 유리창을 막고 일찌감치 마감을 했었다.
왜냐하면 거리에 사람이 없었다. 정말 무섭도록 조용했다.

생각보다 많이 남아버린 음식들을 집으로 싸와서 먹고
그러고도 남아서 냉장고에 넣어두고 한동안은 먹겠다면서 그 때까지도 아무 감이 없이
퇴근 후 평소처럼 집에서 있는것처럼 있었다.

그 때 우리는 30제곱미터 정도 되는 작은 스튜디오에 살았다.
구조는 대충 이렇게 생겼었다. 설명하려고 발로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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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해서 라디오로 뉴스를 듣고
한국에 있는 지인들한테 허리케인 온다고 페북으로 알리고
Irma님이 오고 계신다면서

하늘색이 묘하다고 이런 사진이나 올리고 자려고 누웠으나 나는 잠이 오지 않았다.
그렇게 하지 말라는 건 꼭 하고 싶어서 계속 발코니 유리문 (그림의 오렌지색 부분) 통해서 슬쩍슬쩍 바깥을 보고 뒤척거렸다.
새벽 3시쯤 됐나, 나는 벽쪽에 붙어서 자는데 벽이 엄청 흔들리는거다.
자세히 보니 벽에 금이가기 시작했다.
심장이 너무 쿵쾅거려서 자고 있는 남편을 일단 깨웠다.
(그 와중에 엄청 잘자고 있었음)
혹시 몰라서 침대를 높이 세워서 금이 가고 있던 벽을 막고
좀 더 안전한 곳(이라고 해봐야 어쨌든 스튜디오/원룸) 으로 잠자리를 옮기자고 하고
주방 옆에 있는 바테이블 뒷쪽으로 일단 잠자리를 옮겼다.
남편은 그 와중에 커피를 끓여 마시는 여유..하..
그러고 조금 있다 보니 발코니 쪽에서 물이 들이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때 우리집이 2층이었다.

일단 높은 곳으로 올릴 수 있는 것들은 일단 올리고 집에 있는 수건들 총 동원해서 물을 막기 시작 했다.
그리곤 일단 중요한 소지품, 전자제품들, 여권 등등 대충 챙겨서 화장실옆 벽장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나는 화장실에서 우왕좌왕 하고 있고 남편은 마저 못챙긴 것들을 옮기고 있었다.
남편이 현관 앞에서 뭔가를 옮기고 있는 순간 엄청난 굉음과 함께 현관문이 원래 열리던 쪽 반대쪽으로 터져버렸고
동시에 나는 남편을 화장실 쪽으로 힘껏 끓어 당겼다.
그리고 화장실 문을 닫고 혹시 몰라서 낮에 아이스 박스에 물을 가득 받아뒀는데 그걸로 화장실 문을 막고도
그 엄청난 바람을 막아내기가 역부족이라서 남편이랑 그 아이스 박스위에 나란히 앉아서 등으로 힘껏 문을 막았어야 했다.
전기도 나가고 암흑속에서 태어나 처음 느껴보는 바람의 힘과 소리를 들었다.
남편 손이 덜덜 떨리는게 느껴졌다.
세상에 없던 두려움을 그 때 처음으로 느꼈다.
이러다 진짜 죽을수도 있겠구나.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남편 손을 꽉잡고 마음속으로 수백번을 얘기했던거 같다.
거의 2년이 다 지난 일인데 지금도 생각하면 약간 울컥한다.

6시가 좀 넘었나 날이 약간 밝아오면서 허리케인의 눈에 들어온 다음에서야
밖에서 사람들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겨우 밖으로 나가봤더니 정말 전쟁터가 따로 없었다.
우리가 살던 레지던스에 있는 집들이 거의 전부다 우리집과 같은 구조였는데
허리케인 셔터가 없는 모든 집의 살림살이들이 현관문을 통해서 날아가버린 상태였다.
그러니까 바람이 발코니를 통해서 현관문 방향으로 때렸던것.
우리집은 침대 옆 벽이 아예 넘어가서 뻥 뚤려버렸다.
거의 모든 집들이 그런식으로 피해를 입었다.
다행히 우리 옆집이 허리케인 셔터가 있었던 집이라 그 쪽으로 다 모이게 됐다.
여전히 유리깨지는 소리가 계속났고
여기저기 자동차 알람 소리가 울렸다.
날은 밝았지만 셔터가 닫혀 있는 상태라 그 집으로 모인 사람들 모두 암흑속에서 또 허리케인이 지나가길 기다렸다.

자동차 알람소리를 들으면서 우리차일까? 우리차는 어떻게 됐을까?
집도 완전 박살났는데 차도 그럴까 하나마나한 걱정을 하며 시간을 보냈던 것 같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 차는 이렇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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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안에 커다란 합판 같은게 뒷유리를 뚫고 들어와 있었다.
(이 사진은 한 참 뒤에 비닐 갈이 하면서 찍은 것인듯)

Irma 이후 연달아 두 개의 허리케인이 또 오기로 되어 있어서 우리는 급하게 다 부서져버린 뒷부분을 비닐로 막았어야 했다.
저 이후로 2018년 10월까지 저 차를 탔다는 이야기...
테크니컬 컨트롤이었나 보험이었나가 만료될때까지 저 차를 꾸역꾸역 타고 다녔다..
저게 친구네 네덜란드령 차를 우리가 5000불 주고 사서 정비 받고 매우 지난한 과정을 거쳐서 프랑스령 번호판을 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저렇게 되었다.... (인연이 아닌가봐..)
새삼 지프가 튼튼하다고 느낀게 앞쪽 엔진은 멀쩡해서 운행하는데 아무 이상이 없었음.

아예 뒷부분을 잘라내고 다른 차에서 뒷부분을 가져다가 붙여준다는 사람도 있었는데
우리가 차값으로 준 값보다 더 든다고 해서 그냥 저 상태로 계속 타고 다녔다.
거의 1년 정도 지나니까 섬에 관광객들이 다시 오기 시작했는데
그들 눈에는 진짜 신기했나 보더라.
사진 찍는 사람도 있었다.
근데 우리차만 그런게 아니라 지금까지도 저런 상태로 차를 몰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 지금은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섬 여기저기 버려진 차들이 많다. 보트들도 아직도 바다에 가라앉아 있는 것들도 많고.
아직도 지붕이 없는채로 사는 사람들도 있고.
벽만 남거나 뼈대만 남은 집들도 많고.
그런데 여전히 부동산 가격은 요지부동이고. (최대의 미스테리)

+허리케인에 대해서는 할 말이 더 많은데 더 쓰다가는 날 새야 될 것 같아서 오늘은 여기까지 쓰겠습니다 ㅜㅜ
++(TMI) 섬에 와서 중고차 2번 샀다가 아 이건 아닌가봐 하고 2018년 11월에 그냥 새차를 샀네요...


Comments 2


자연은 정말 무시무시하군요. 섬이어서 더 위력이 강했을 것 같습니다. 다치지 않으셔서 다행입니다..

13.08.2019 0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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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에 더 무서운 것이 있었는데 다음에 또 적어볼테니 심심하면 읽어주세요 ㅎㅎ

14.08.2019 0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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