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지정학적 차원에서 바라본 ‘종교개혁’: 유럽 발칸화의 기초 작업 I


/ ‘유럽 제국’은 언제 누구에 의해 사지(四肢)가 절단되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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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사를 승자의 거짓말로 덧칠한 ‘휘그적 편견’이 활자의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어딜 봐도 무슨 책을 읽어도 똑같은 말만 되풀이하는 동어반복이다. 역사가 평면화된다. 프레스기에서 눌려 나온 철판처럼 납짝해진다. 진실은 오리무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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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카톨릭 제국의 붕괴를 열망했던 유럽 프로테스탄티즘 세력은 일단 “종교의 자유”라는 미끼를 던지기로 중지를 모았다. 그리고 뭔가 그럴 듯 ‘쫌 있어 보이는’ 그런 스토리 라인도 궁리해냈다.

선과 악의 이분법 구도를 설정했다. 경험상 그게 가장 잘 먹히기 때문이다.

마르틴 루터는 독실한 청정 사제로 불의에 저항하고 선을 구현하는 ‘주인공’으로 설정된다. 반면에 이런 양심적인 루터를 못살게 구는 악의 무리들은 ‘카톨릭 사제들’로 설정된다. 물론 ‘악의 축’은 로마 교황청이다. 그게 1차 파괴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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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바티칸 성당 건축을 위해 “무지몽매한 백성들에게 돈을 울궈낼 목적으로 유럽 전역에서 면죄부를 팔아제끼는 카톨릭 사제들”은 좋은 멋이감이 된다. 그래서 루터가 비텐베르그 대학 교회 정문에 ‘95개조 반박문’을 못질해 붙힌 것으로 이야기를 꾸며냈다. 바티칸이란 ‘거악(巨惡)’에 맞서 용감하게 싸우는 루터 . . 멋지지 않은가? 그러나 루터는 못질을 해서 그런 종이쪼가리를 붙힌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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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권력은 ‘종교’라는 반석 위에 기초해 있다. 그 종교는 성스러운 형태를 띠는 것이 보편적이지만 계몽시대 이후에는 ‘세속종교’의 형태를 띠고 나타났다. 그렇다면 권력을 뒷받침하는 대표 종교의 단일성에 타격을 가하면 얼마 후 그에 기반한 권력도 서서히 붕괴될 것은 자명하다. 권력의 ‘정신적 구조’가 무너지게 되면 정치권력은 뒤따라 서서히 약화되다가 궁극적으로는 쇠락의 길로 접어든다. 유럽 프로테스탄티즘 세력은 누구보다도 이를 잘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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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 숭배”라며 성상파괴를 하는 건 기본이었다. 고귀한 가치를 지니는 고대 문화재를 파괴하며 즐기는 탈레반의 기원은 프로테스탄티즘에서 찾을 수 있다. 그들의 ‘야만적 파괴’에 이의를 제기하면 “종교의 자유”를 탄압한다며 길길이 날뛰었다. 극도로 호전적인 이 성상파괴 무리들은 ‘일부러’ 사회적 비난과 분노를 자아내기 위해 행동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마 그랬을 것이다. ‘큰 그림’이 있었을 것이다.

일찍이 헨리8세(1509-1547) 때 올리버 크롬웰의 조상인 토마스 크롬웰의 조언에 따라 교황과 척을 지고 국왕이 교회 재산을 모두 가로채고 교회의 수장이 되는 국교회 시스템으로 전환한 잉글랜드의 퓨리턴들은 성상파괴 분야에서도 ‘챔피온’이었다. 퓨리턴이 뭔가? ‘정화된 사람들’이란 뜻이다. purify는 ‘정화하다, 깨끗이 하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자신들과 달리 퓨리턴이 아닌 사람들은 ‘정화되지 않은 더러운 사람들’이 된다. 자신들이 가진 신념에 동의하지 않으면 모두 지하드를 통해 죽여버려야 한다는 이슬람 살라피스트 극단주의 테러전사들이 여기서도 발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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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 탈레반인 국제 프로테스탄티즘 세력은 ‘파이브 솔라즈(Five Solas)’라 불리는 ‘신앙의 비아그라’를 유럽 전역에 방사하기 시작했다. 카톨릭 사제들과 교회의 영향력을 도려내기 위함이었다. 방구석에 쳐박혀 주구장창 ‘나홀로 기도’와 ‘성경’만 붙잡고 늘어지는 게 올바른 신앙의 길이라며 그렇게 하라고 ‘무지한 신도들’에게 열심히 권고하고 다녔다. 신과의 소통을 ‘직거래’로 하라는 것이다. 사제니 뭐니 하는 “사기꾼 같은 자들”에게 ‘수수료’ 떼이지 말고 이들을 과감히 신앙에서 배제하라고 명령했다.

오직 성경 Sola Scriptura(솔라 스크립투라)
오직 그리스도 Solus Christus(솔루스 크리스투스)
오직 은혜 Sola Gratia(솔라 그라티아)
오직 믿음 Sola Fide(솔라 피데)
오직 하나님께 영광 Soli Deo Gloria(솔리 데오 글로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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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프로테스탄티즘 세력은 ‘30년 전쟁’을 통해 스페인 카톨릭 제국을 아주 표독스럽게 물어뜯음으로써 유럽 단일 제국의 균일성에 막대한 타격을 입히는데 성공했다. 물론 이전부터 비밀리에 진행시켜온 종교개혁 프로젝트는 다양한 행위주체들의 이익이 자동적으로 수렴됨으로써 성공을 다지게 되었다. ‘얼치기 루터’같이 이용 잘 당하는 자들을 앞세우기도 하고, 작은 영토를 가진 군주들을 부추겨 앞에서는 “종교의 자유”와 “전제적 교황으로부터의 독립”을 외치면서 뒤로는 교회와 수도원 재산을 모두 빼앗아 ‘한 재산’ 단단히 챙겨 ‘로또’를 맞아 보겠다는 희망을 불어넣어 줌으로써 아주 스무드하게 진행되었다. 물론 뛰어나고 헌신적인 요원들과 바람잡이들도 그 역할을 충분히 했다. 칼뱅, 쯔빙글리 . . .

30년 전쟁이 종결되고 베스트팔렌 조약(1648)이 체결되었다. 조약의 핵심은 이거다.

“국가주권이 짱이야! 그거보다 더 높은 상위권력은 없단다, 얘들아! 알았지? 알았으면 앞으로 나와 한 명씩 서명들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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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공식적으로 제도화되고 문서화된 유럽의 지정학적 ‘발칸화(balkanization)'가 점차 확대되면서 전통적으로 합법적으로 인정되던 ‘초국가적 권위(supra-national authority)’의 모든 형태가 부정당하게 되었다. 이제 유럽은 ‘하나의 문명제국’으로 우뚝 설 수 없게 되었다. 제국은커녕 주권을 전제로 하는 국가들의 수평적 연방인 ‘유럽 연방(Untied states of Europe)’의 가능성조차 봉쇄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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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처럼 ‘비유럽적인’ 초국적 권력(EU, IMF, NATO 등)이 유럽에 대거 난입해 주인행세를 하는 조건을 만들어 준 것은 바로 다름아닌 30년 전쟁의 결과인 ‘베스트팔렌 조약’이었다. 그리고 30년 전쟁은 종교개혁의 결과물이다. 이처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연쇄 속에 유럽의 사지(四肢)를 절단하려는 지정학적 흉계가 숨겨져 있다니 무척 놀랍다.

종교 개혁 ⇒ 30년 전쟁 ⇒ 베스트팔렌 조약 ⇒ 유럽의 발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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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영 제국”이 있지 않았느냐고 누군가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이 진정 ‘유럽의 제국’인가? “대영 제국”으로 인해 유럽인들이 두루두루 득을 봤는가? 필설로 표현하기도 힘든 패륜적 잔혹행위들로부터 거둬들인 그 산더미 같은 돈은 모두 누구 통장에 꼽혔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허수아비 왕실에 푼 돈 몇 푼 던져 주고 나서 나머지는 모두 동인도회사의 주주들의 승자독식(winner-takes-it all)이 아니었던가! 그 주주놈들의 국적과 이름을 한 번 까보면 여러분은 “역시 . . . 그 놈들이었군!”하면서 끌끌끌 혀를 차게 될 것이다. 맞다, 그 놈들이다! 나중엔 이름조차도 차명으로 처리해 실제로 누가 주주인지 알기도 힘들다. 극도로 정체를 밝히기 꺼려하며 이름도 몇 번씩 바꾸고 모든 거래를 대리인을 통해서 하는, 조심성 많은 그들! 수많은 바지사장들을 고용하지만 정작 자신은 결코 남앞에 나서는 법이 없는 티라노사우스 공룡 쩐주들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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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제국(European empire)’이 마치 ‘라면 부스러기’처럼 잘게 부서지는 역사적 대목이 있다. 유럽이 ‘제국(empire)’의 위용과 면모를 완전히 상실하고 잘게 쪼개지는 ‘발칸화(balkanization)’ 과업은 ‘종교개혁’으로부터 테이프를 끊고 시작되었다. 바로 이것을 말하고 싶었다. ‘종교개혁의 지정학적 동기’가 앞으로 더 자세히 탐구되어야 한다. 거기를 제대로 이해해야 지금 미제국에 의해 거세당한 ‘유럽의 불임’과 ‘정치적 자살’을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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