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정의 장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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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의 장치

이틀 전은 한 해의 마지막 날이었다. 나는 마지막 날이면 이상한 기분에 휩싸이곤 했다. 내가 나이를 먹었다는 걸 확실하게 실감할 길이 없다는 거다. 1초 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어떤 차이가 있는 거지. 다행히 앞자리 숫자가 바뀌는 해면 술, 담배를 떳떳하게 할 수 있다던지, 이제는 어리광 같은 거 통하지 않는 진짜 나이가 되어 버렸구나 하고 착잡하게 통달하거나 그 외 나머지는 좀처럼 내가 달라졌다는 게, 달라져야만 한다는 게 마음으로는 느껴지지만 막상 그걸 자각해 보자니 뭐부터 해야 할지 하는 게 맞는지 어리둥절한 시간이 많았다. 변화를 극도로 두려워하는 성향 탓에 스스로 나이도 거부하듯 살았던 것 같다. 그러니까 어제가 오늘이고 오늘이 내일이고 내일이 그다음 날인 듯 지낸다. 정말이지 재미없는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 달력 속 빨간 기념일들은 내 눈엔 모두 거무튀튀해 보였고 심지어 생일날엔 누군가 알려주지 않는다면 어제가 내 생일이었어? 할 정도로 무감각하게 지냈다.

성향이라는 거 분명 타고난 부분과 환경적 요인이 결합된 형태로 현재 진행형이라 할 수 있다. 언제부터 이런 회의적인 성향이 내 마음 깊은 곳에 뿌리 깊게 안착된 건지, 누가 이리도 깊게 씨앗을 심어 둔 건지, 어쩌다 내가 허락해 버린 건지, 어떤 천재지변이 일어나도 그 나무만큼은 굳건하게 펄럭이고 있는 걸 보자면 저절로 팔짱이 끼어진다. 복잡한 심정으로 흠.... 이건 어쩔 수 없겠는데. 살다 보니 나이테만 점점 더 견고해져서 자력으로 그 사이에 틈을 드리운다는 게 참으로 쉽지가 않다. 쉽지가 않아.

이런 상태는 사람에 따라 위험한 상황 일 수도 있다. 어제가 오늘 같고 내일도 오늘 같은 날일 거라 여기며 무딘 상태로 산다는 건 마치 날을 기다리는 산송장과 다를 게 없지 않은가. 바지런하게 오늘을 버텨 왔다면 오늘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몸소 체득된 상태라 무뎌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당연지사다. 칼은 숫돌로 사람의 마음은 무어로 다시 갈아야 할까. 나로서는 잘 모르겠다. 모두의 열정의 장치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올해는 코로나로 제야의 종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렇다 하더라도 21년은 찾아왔고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메시지들이 왔다. 현재 나에게 연말연시 같은 날은 남아있는 통점을 확인하는 날이다. 따뜻한 메시지를 따끔한 바늘로 느끼는 것도 죄송한 따름이지만 그 말로 내일을 긍정하는 날. 내일은 좀 더 다른 날로 모색해보자 동진아 작심삼일이면 어때 삼일한 것도 대단한 일이야. 새해라는 좋은 핑계로 마음껏 칭찬해 줘야지. 고마운 분들에게는 고민 없이 축복을 내리면서 정작 나에게 등한시한 걸 반성하는 거야. 결국 열정이든 긍정이든 뭐든 간에 모든 장치는 내가 설치하는 거니까.

이동진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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