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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다림...


이십 년 전에 절에서 만난 보살님이 79세로 돌아가셨다.
당시에 무우 배추를 계절마다 절에 갖다주셨다.
99년 이후로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내가 밖으로 떠돌아다녔다.) 이주전에 아들이 절에 와서 이야기를 나누고 병원에 있다는 말에 직접 통화만 했다. 코로나로 인해서 병문안은 어려운 상황이고.
그런데 오늘 아침에 돌아가셨다고 연락이 왔다.
오후에 장례식장에 다녀왔다.

한 시간 가량 염불하는 동안에 문상객을 드문드문 볼 수 있었다.
절을 하는 사람 보다 서서 묵념만 하는 사람이 훨씬 훨씬 많았다. 지역이 전주라 그렇다고 해도 이제는 상가집에 문상가서도 절 보다는 그냥 서서 묵념하듯 인사하는 사람이 이렇게 많아졌을 줄은 몰랐다.
두세사람만 절을 했다.

문화가 바뀌었다. 그 속에 장례문화까지 많이 바뀌었다.
어렸을 적에 마을에서 사람이 죽으면 제일 먼저 돼지를 잡았다. 마을 사람이 모이면 먹을 것을 먼저 준비했다. 한쪽에서는 장례준비를 하고 한쪽에서는 잔칫집같이 음식을 장만했다. 아이들은 신났고 어른들은 밤새 윳놀이를 했다.
사람이 모이면 일단 먹고 마셔야 했다. 썰렁하지 않도록...그렇게 온 마을 사람이 모여서 슬픔을 달래고 장례를 치렀다.

그러다 어느때 부터인지 보험 다음으로 히트상품 같은 상조회사가 생겨났다. 정말 힛트상품이었다.
노령화가 엄청난 요즘 시골 마을에서는 장례식장까지 올 사람도 없다.

장례식장의 겉모습은 이십 년 전과 크게 달라진 것을 모르겠다. 삼십 년 전과는 많이 달라졌지만... 하지만 그 안에서 어떤 모습은 많이 바뀐듯 했다. 코로나로 인해서 달라진 모습도 있겠지만 뭐랄까 '관혼상제' 가 민족의 전통을 지키는 어떤 풍습일 텐데... 상을 치루는 방식이 바뀌고 있다. (김진명의 글자전쟁이 생각나넹)

이제는 그냥 삼일장도 없애고 서양식으로 정한 시간에 장례식장에서 모두 함께 만나서 고인을 기리는 것도 괜찮겠다.

어느새 기억이 이십 년이 지났다.

그런데 이렇게 비내리는 밤 마음은 더욱 경제적 자유를 이루고 싶은 생각이 드는 것은 왜 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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